미국 최대 쇼핑 행사인 블랙프라이데이(11월25일)를 맞아 국내 패션 쇼핑몰이 진행한 할인 행사 상품을 살피던 직장인 박모 씨(33)는 이처럼 말하며 혀를 찼다. 그는 10개 한정으로 준비된 티셔츠를 선착순 구매하면 최대 50%의 특별할인 혜택을 받는다는 문구에 끌려 상품 가격을 확인해봤다고 했다.
박 씨는 “평소 사고 싶었던 제품이라 가격 추이를 보고 있었다. 특별 할인가라고 홍보한 금액이 기존 판매가보다 오히려 1만2000원 가량 더 비쌌다”면서 “선착순 판매라고 하면 시간에 쫓겨 곧바로 가격을 비교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소비자를 우롱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3일 관련 업계와 소비자들에 따르면 블랙프라이데이에 맞춰 국내 패션·뷰티업체들이 ‘특별할인 혜택’을 내세워 판촉 행사에 들어갔지만 생색내기용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소비자들을 ‘호갱(호구+고객)’ 취급해 기만하는 눈속임 상술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한경닷컴이 14~23일 약 열흘간 각종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인터넷몰을 조사한 결과, 특별할인 혜택 상품 중에는 원래 판매가보다 높게 책정된 경우를 드물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대형 의류 쇼핑몰 A사의 경우 선착순 특별 할인에 들어간 후드 티셔츠 제품 가격이 4만원대 중반으로 책정됐으나 기존 판매가는 도리어 1만원 이상 저렴한 3만원대 초반에 불과했다. 한 바지 제품은 할인 혜택을 받으면 7만원대 중반 가격에 살 수 있다고 했지만, 역시 할인 쿠폰 등을 적용해 팔던 기존 판매가는 6만원대 중반으로 1만원 정도 쌌다.
이 패션몰의 단골 윤모 씨(26)는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앞두고 할인 폭을 줄이고 판매가를 높이더니 막상 행사에 들어가도 결국 기존에 살 수 있는 가격보다 2000~4000원가량 비싸더라”면서 “큰 차이는 아니지만 대대적 할인이라 해놓고 꼼수를 부린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소비자 김모 씨(23)도 “막상 할인 행사에 들어가면 보유 할인 쿠폰을 사용할 수 없다는 둥 각종 제약을 둬 더 비싸게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쇼핑몰들이 대폭 할인 행사를 진행하기 전에 상품 가격을 올려놓고 할인율을 적용해 기존과 비슷한 가격대로 팔면서, 소비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대형마트 B사의 경우에도 최근 할인 행사를 기획하면서 일부 묶음 상품을 단품 구매시보다 높은 판매가에 책정했다. 한 가공 식품류를 기존 7000원대에 판매했지만 할인 행사 전 판매가를 16000원 수준으로 조정한 뒤 반값 할인을 적용하는 식이었다.
가공식품이나 생활용품 세트 가격은 단품 구매 시보다 수십%가량 높은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대형 쇼핑몰 C사에서는 연중 두 차례 여는 대형 프로모션 행사에서 캠핑용품 세트를 단품으로 각각 구매하는 것보다 18%가량 가격을 높여 팔았다. 스피커나 이어폰 같은 소형 가전제품을 할인 행사 전 미리 4만~5만원 가량 올려 책정한 후 프로모션에 들어가 가격 인하폭이 크지 않음에도 대폭 할인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 사례도 있었다.
이에 대해 유통업계는 “할인 행사에 들어가기 전 제조업체들과 판매가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일부 변동이 있을 수 있다”며 “오픈마켓(통신판매중개자)의 경우 입점업체들 가격 정책에 일일이 개입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은 ‘전형적인 상술’이라고 주장했다.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모든 상품이 내건 할인율만큼 실제로 싼 것이 아니기 때문에 쇼핑 전 충분히 검색하고 준비해 가격 혜택을 받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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