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대표하는 곡예사이자 안무가인 요안 부르주아(41)의 퍼포먼스를 촬영한 영상 속 장면이다. 영상에 붙은 제목은 ‘성공으로 가는 길은 직선이 아니다(Success isn’t linear)’. 1분35초짜리 이 영상은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되며 전 세계에 퍼졌다. 수많은 실패와 도전의 반복 끝에 성취를 이루는 인생의 한 장면을 표현한 퍼포먼스에 감동받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중력을 가지고 노는 남자’로 불리는 부르주아가 국내 무대에 처음 오른다. 25~27일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대표작 ‘기울어진 사람들’과 솔로작 ‘오프닝2’를 선보인다. 서커스와 현대무용을 결합한 독특한 안무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그를 인터뷰했다.
부르주아는 프랑스 브장송서커스학교에서 곡예 기술을 익혔다. 이후 국립서커스예술센터(CNAC)와 국립현대무용센터(CNDC)를 동시에 다니면서 서커스와 현대무용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독특한 예술 실험이 시작됐다. 그의 공연은 서커스와 현대무용 중 어느 하나로 정의하기가 어렵다. 중력과 원심력, 관성 등을 이용한 그의 곡예는 단순히 아슬아슬한 긴장감뿐 아니라 미적 감동을 준다. 부르주아는 “서커스는 아직도 내 자유로운 상상력의 원천”이라고 했다.
중력은 그의 주된 창작 모티프다. 부르주아는 작품 속에서 중력이란 불가항력을 거스르거나 이용한다. 2017년 프랑스 국립묘지 팡테옹에서 공연한 ‘위대한 유령’에서 무용수들은 트램펄린과 턴테이블, 추, 시소 등을 활용해 중력을 비롯한 운동 법칙을 이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높은 위치에서 떨어지는 순간에도 무게가 느껴지지 않고 가볍게 다시 튀어 오르는 무용수들의 모습은 마치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를 연상케 한다. “지구상의 모든 것은 떨어집니다. 추락하는 것은 종종 정지해버리죠. 우리는 항상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움직이며, 우리를 짓누르는 중력에 대항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중력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건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공연하는 ‘기울어진 사람들’도 중력이 주된 테마다. 정사각형 턴테이블 모양의 판자 위에 다섯 명의 무용수가 위태롭게 서 있다. 턴테이블은 빠른 속도로 돌기 시작하고, 흔들리는 판자 위에서 무용수들은 쓰러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중력과 원심력을 활용해 넘어질 듯 기울어지고, 떨어질 듯 매달린 모습이 지켜보는 이를 긴장하고 몰입하게 한다. 잔잔하고 담담한 음악을 배경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무용수들을 몰아붙인다. 회전을 거슬러 달리다 쓰러지고, 일어나고, 서로 끌어안기를 반복하면서 불안정한 시간을 버텨낸다. 그는 “인간은 ‘벡터’(크기와 방향을 가진 물리량)로서 물리적인 힘을 거스르려고 할 때 비로소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배우’가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공연 전후에 10분 남짓으로 짧게 진행되는 ‘오프닝2’는 부르주아의 솔로 무대다. 중력과 무중력, 낙하와 정지, 형성과 해체 등 상반되는 성질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고조된다.
부르주아는 LG전자의 시그니처, 애플 에어팟, 패션브랜드 ‘갭’ 등의 광고에 나와 더욱 유명해졌다. 그에게 기업 브랜드와의 협업은 대중과 소통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는 “상업 광고 작업은 예술 작업과는 또 다른 형태의 영감을 준다”며 “더 많은 대중에게 내 퍼포먼스가 닿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나갈 때 문득 고민이 들었다. 그의 공연을 어떻게 정의해 소개해야 할까. 부르주아는 서커스와 현대무용의 ‘화학적 결합’을 통해 이전에는 없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만들어냈다. ‘당신의 장르를 어느 것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부르주아는 한마디로 답했다. “Living(삶)”.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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