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가 ‘주거취약층 배려’를 강조하니 일견 반가우면서도 당혹스럽다. 서민주택 ‘빌런’이 뜬금없이 ‘영웅’을 자처한 형국이어서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임대아파트는 돈이 안 된다”며 외면해온 그다. 대장동 게이트가 잘 보여준다. 35%까지 가능했던 임대아파트 비율을 6.7%로 추락시킨 주역이 이 대표다. 시장 재량권을 최대한 악용하고, 고의로 의심되는 9차례 경매 유찰을 통해 임대 부지를 대거 분양용지로 전환한 결과다. 대장동 일당이 꿀꺽한 부당이익 8500억원(경실련 추정)은 그렇게 탄생했다.
백현동 사업은 더하다. 민간 개발회사는 사업 초기 ‘100% 임대아파트’ 건설을 제안했다.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 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장은 아무 조건 없이 ‘분양 90%, 임대 10%’ 파격안에 직접 결재했다.
임대주택을 둘러싼 민주당 지도부의 이율배반도 볼썽사납다. 김성환 정책위원회 의장은 불과 2년 전 문재인 정부의 임대아파트 조성계획(8·4 공급대책) 발표 때 격하게 항의했다.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임대아파트를 왜 내 지역구에 지어야 하느냐고 했다. 정청래 최고위원, 우원식 예결특위 위원장, 이소영 국토위원, 고용진 수석대변인도 같은 이유로 임대주택에 반대했다.
임대주택 예산 5조6000억원 삭감은 문 정부가 부동산정책 실패에 대처해 최근 2년간 단기 급증시킨 예산의 정상화 과정이다. 그래도 내년 예산(16조9000억원)은 문 정부 5년 평균(16조8000억원)보다 많다. 5년간 공급할 공공분양도 100만 가구로 문 정부(80만 가구) 때를 웃돈다. 100만 가구 중 35만 가구는 임대와 분양의 장점을 혼합한 새로운 방식이다. 임대료를 내고 6년간 거주한 뒤 분양 여부를 결정하는 등 선택지를 크게 넓혔다.
‘임대주택 예산이 많을수록 따뜻한 예산’이라는 고정관념부터 틀렸다. 나쁜 입지와 품질 탓에 외면받는 임대 아파트가 지금도 적잖다. LH 공공임대의 공실률(6개월 이상)은 3.5%(3만2038가구)로 역대 최고다. 지역별·단지별로는 20~30% 공실률도 허다하다. 이런 점을 외면한 채 공공임대 예산만을 따져 ‘비정한 칼질’이라고 비난한다면 서민의 주거 고통만 커질 뿐이다. 민주당은 어제 국토위에서 ‘이재명표 예산’이라며 공공임대 예산을 7조원이나 늘렸다. 동시에 공공분양 예산은 1조원가량 감액해 서민·청년의 새로운 내 집 마련길이 원천봉쇄됐다.
거대 야당의 선동정치에 볼모 잡힌 예산은 임대주택만이 아니다. 임대주택과 함께 민주당이 ‘3대 민생예산’으로 지목한 ‘지역화폐’와 ‘노인일자리’ 예산 퍼주기도 심각하다. 지역화폐는 액면의 10%를 중앙과 지방정부가 4 대 6으로 분담하는 상품권에 불과하다. 10% 할인 덕에 소비자는 좋아하지만 본질은 특정 지역 소비에 대한 세금 투입이다. 부유한 지자체의 지역화폐 발행량이 통상 더 큰 만큼 국고 지원의 형평성도 훼손된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정부 제출안에 ‘0원’인 예산을 7050억원으로 밀어붙일 태세다.
거대 야당은 고용통계 분식용으로 의심받은 노인알바 일자리 역시 ‘닥치고 증액’ 모드다. ‘어르신 예산 더 챙기겠다’는 감성적 홍보도 빠뜨리지 않는다. 약자를 앞세워 표를 향해 밟아가는 현란한 스텝이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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