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이 자금 유출 리스크를 지면서 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방증이다. 현재 한국 경제는 말 그대로 풍전등화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복합 악재에 글로벌 경기 침체까지 겹치며 이미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는 경고가 나온다. 성장률은 2년 연속 반토막 행진이다. 한은을 포함한 거의 모든 국내외 경제연구기관이 지난해 4%였던 성장률이 올해 2%대, 내년은 1%대로 떨어질 것으로 점치고 있다. 특히 수출이 문제다. 수출은 팬데믹 광풍 속에서도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최후 보루였다. 그러나 반도체 시장 침체 등으로 지난달 2년 만에 첫 역성장한 데 이어 내년엔 3.1% 더 줄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 부진은 가뜩이나 어려운 내수와 투자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2.2%)를 유지하면서 한국 성장률은 두 달 만에 0.4%포인트 하향 조정(2.2%→1.8%)한 이유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우리 금리정책은 국내 요인이 먼저다. 금리 인상으로 여러 경제 주체의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점을 예상했다”고 말했다. 물가도 급하지만 성장을 챙기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다다랐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실제로 1%대 성장으로는 나라 살림살이부터 일자리, 복지까지 경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사태를 피하기 어렵다.
저성장 기조를 시급히 되돌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 묘수는 있을 수 없다. 고금리 상황과 부동산시장 침체, 금융시장 경색, 부채 부담 등으로 소비와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기는 쉽지 않다. 수출을 통해 성장동력 엔진을 다시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다행스럽게 새 정부가 5대 수출강국 도약 등 경제정책 방향을 잘 잡았다. 노동·규제·연금·교육 등 구조개혁을 통해 기업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통해 수출을 늘린다는 방향이다. 그러나 기업들을 뛰게 할 법인세 인하와 규제완화 관련 법안들이 모두 거대 야당의 몽니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또 산업 현장은 민주노총 파업으로 물류와 생산이 멈춰 설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두고 저성장 타개를 논할 수 없다. 경제위기 앞에 여야, 노사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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