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에는 선악(善惡)이 없다고 합니다. 전쟁은 당사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이고 호재입니다. 방산업체가 대표적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포성이 울릴 때 방산주는 축포를 쏩니다. 담배 기업, 주류 기업, 카지노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에 해롭고, 중독성이 높아 패가망신에 이를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팔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이런 주식들을 죄악주(sin stock)라고 부릅니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욕구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경기침체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죄악주가 빛을 발하는 이유입니다.
눈길을 끈 건 내년 성장률 전망치였습니다. 기존 2.1%에서 1.7%로 대폭 낮췄습니다.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과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을 제외하면 2000년대 들어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한은의 전망치는 주요 국내외 기관들의 전망치보다 낮았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8%, 신용평가사 피치가 1.9%, 국제통화기금(IMF)이 2%로 내다본 것보다 더 어둡게 전망했습니다.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배경에는 내년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습니다. 각국 금리 인상 여파, 식어가는 수출 엔진, 고물가 등으로 한국 경제가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비관론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전 세계가 다 같이 어려울 때 우리만 별도로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기는 굉장히 어렵다"며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내린 건 대부분이 주요국의 성장이 둔화한 요인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죄악주의 성적은 어떨까요.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담배 기업 KT&G는 올해 들어 22% (25일 종가 기준)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카지노 기업 파라다이스 역시 7% 상승하며 준수한 성적을 기록 중입니다. 반면 주류 기업 하이트진로는 15%가량 떨어지며 대조를 이뤘습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는 20% 가까운 하락률을 보였는데요. 세 종목 모두 시장을 넘어서는 수익률을 올렸습니다. 파보치 교수의 연구 결과가 현실화한 셈입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국민연금도 죄악주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요. 지난 2월 기준 국민연금은 죄악주에 5조3000억원(국내 1조6856억원·해외 3조889억원) 규모로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국내 주식 투자액 절반 이상이 KT&G(8788억원·52.1%)에 집중됐고, 강원랜드(3932억원·23.3%), 하이트진로(2177억원·12.9%)가 뒤를 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죄악주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강조되면서 죄악주 투자를 멀리하는 투자자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 3월 영국 연금 회사인 스코티시위도우는 담배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를 멈출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잠재적인 규제나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위험 요인으로 꼽힙니다.
박병준 기자 r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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