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점에서 최근 나온 그의 여섯 번째 시집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는 낯설다. 아름다운 낱말로 자연을 예찬하는 대신 직설적인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 삶의 그늘 속 이야기들을 담았다는 점에서 ‘시로 쓴 자서전’인 셈”이라고 말했다.
스물다섯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갔던 일, 신춘문예에 지원하던 겨울 아침 날의 기억, 아내 배 속에 있던 아이의 죽음 등 밖에 잘 꺼내놓지 않았던 이야기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란 말처럼 시로 승화한 그의 삶은 모든 사람이 겪는 감정이자 시대의 아픔이다.
“시는 근본적으로 이름을 불러주는 명명 행위와 맞닿아 있습니다. 특히 그늘 속 존재를 바라봐주는 게 시의 역할이죠. 그런데도 ‘시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제가 다루지 않은 주제가 너무 많았어요. 이번 시집에는 그동안 제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던 것들을 쏙 담았습니다.”
형식도 확 바꿨다. 시적 은유와 상징, 압축미를 추구하던 것에서 좀 더 자유로워졌다. 16쪽에 이르는 짧은 소설 같은 시도 있다.
그는 “손택수에게 붙은 꼬리표를 떼고 싶었다”고 했다. “문학청년 시절로 돌아가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시를 썼습니다. 시를 쓰면서, 심사를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것이 시’라고 규정했던 틀을 깨부수고, 시란 무엇이고 언어란 무엇인지 다시 질문을 던져보려 했습니다.”
시집 제목은 원래 ‘그 눈빛이 나의 말이다’로 지으려 했다. ‘죽음이 준 말’이란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조문을 가서 유족과 인사를 나눌 때면 늘 말문이 막힌다”로 시작하는 이 시는 “그럴 때 만난 눈빛들은 잘 잊히질 않는다/그 눈빛들이 나의 말이다”로 끝을 맺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건이나 경험 앞에서 언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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