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가루' 분체 시장 개척한 대가파우더

입력 2022-11-28 17:48   수정 2022-12-06 16:44


‘가루 분(粉)’자를 쓰는 분체업은 말 그대로 재료를 가루로 만드는 산업을 뜻한다. 식료품부터 화학품, 플라스틱, 2차전지까지 가루가 쓰이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다. 이 분야에서 국내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는 업체가 있다. 국내 최초 분체 설비기업인 대가파우더시스템이 주인공이다. 포스코케미칼, 삼성SDI, LG화학, 한화솔루션, KT&G, 3M, 바스프 등 세계적 기업들이 오랜 고객사다.

대가파우더는 부산에서 양조업을 하던 창업주 최대식 전 회장이 1970년 서울 구로구 온수동에 천막 공장을 세운 게 시작이었다. 일본 분체기계 회사인 호소카와미크론 연구원으로 일하다 귀국한 지인이 분체업을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됐다. 최은석 대가파우더 대표는 “분체업은 건조-분쇄-혼합-이송-집진 과정을 거친다”며 “이걸 통틀어 분체 플랜트라고 하는데 국내에 분체 플랜트 기업은 대가파우더밖에 없다”고 28일 말했다.

분체 플랜트가 어려운 이유는 고객사의 요구에 맞게 100% 맞춤 생산해야 해서다. 대가파우더가 처음부터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초창기엔 변변찮은 설계도 한 장 없었다. 일본 기계를 수없이 뜯고 조립한 역설계 끝에 겨우 제품을 만들었지만 기대 이하였다. 손해가 쌓이고 자금난에 시달렸지만, 최 전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창업 10년이 지나자 품질이 안정화하더니 한국 산업화가 속도를 내면서 수요가 쏟아졌다. 일본에서 분쇄기를 들여오던 대기업도 대가파우더에 줄을 섰다.

최 대표가 경영에 뛰어든 시점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한국 경제가 휘청일 때다. 프랑스 유학 후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최 대표는 자신이 대를 이어 회사를 이끌 것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회사를 물려받자 눈앞이 캄캄했다. 위기의 순간 그는 수출을 떠올렸다. 대표 취임 후 1년 만인 1999년 태국의 SCG그룹에 자체 이름으로 설비를 수출했다. 이후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으로 수주 영토를 넓히면서 이젠 연 매출의 40%가량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문제는 또 있었다. ‘2세 경영’에 대한 회사 내부의 편견에 마주한 것이었다. 30~40년 근속직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집에 들어가지 않고 현장에서 먹고 자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직원들과 함께 작업복이 흠뻑 젖을 정도로 일하다 보니 직원들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직원을 대우하지 않는 회사는 오래갈 수 없다”며 “직원에 대한 존중이 장수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대가파우더는 천연 식물성 소재로 만든 의료용 분말 지혈제 ‘스팁씰’과 링거 내 불순물을 99% 걸러내는 세라믹 주사기 필터 및 수액 세트 ‘씨아브이인퓨전세트’를 내놓으며 바이오로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분말 지혈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증을 앞두고 있다.

의료기기를 통한 사업 다각화는 지속적인 매출 증가와 신규 인력 채용 효과를 가져왔다. 2017년 매출 170억원, 직원 수 78명이던 규모는 2019년 매출 263억원, 직원 수 88명으로 확대됐다. 올해는 320억원가량의 매출을 전망하고 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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