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회사채에 투자하는 시리즈펀드의 ‘사모펀드 쪼개기’ 논란을 두고 파인아시아자산운용과 벌인 소송전 2라운드에서 원심 판결을 뒤집고 승소했다. 똑같은 회사채를 사들인 사모펀드들은 같은 상품이기 때문에 투자자가 모두 합쳐 50명 이상이면 공모펀드 규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 2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행정4-1부는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파인아시아자산운용 전 대표인 A씨에게 과징금 1460만원을 부과한 처분을 취소한 판결에 불복해 낸 항소심에서 최근 원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시리즈펀드에서 개별 펀드들은 서로 같은 종류의 증권에 해당한다”며 “파인아시아운용은 합산 투자자 수가 50명 이상임에도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A씨의 중과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금융당국이 파인아시아운용이 설정해 판매한 회사채 시리즈펀드의 투자자 모집 방식을 문제 삼으면서 비롯됐다. 이 운용사는 2017년 4월부터 2018년 3월까지 현대중공업, 금호석유화학, 대한항공, 한독 등이 같은 날 발행한 회사채를 여러 개 사모펀드를 통해 투자했다. 각 펀드별 투자자는 모두 50명 미만으로 모았다.
증선위는 이를 50명 미만의 투자자로 구성한 여러 펀드로 같은 종류의 상품에 투자하는 ‘사모펀드 쪼개기’라고 판단하고 2020년 7월 A씨에게 과징금을 부과했다. 똑같은 회사채에 50명 이상이 투자했기 때문에 각 펀드는 모두 공모로 봐야하며, 이 운용사는 증권신고서 제출 등 자본시장법상 공모펀드 모집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반발한 A씨는 “펀드별로 회사채 매입 시기와 가격, 펀드 설정일, 운용보수, 이익분배 방식 등도 다르기 때문에 각 펀드를 같은 종류의 증권이라고 볼 수 없다”며 그 해 9월 과징금 부과 취소소송을 냈다. 1심도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A씨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자본시장법 231조는 같은 집합투자기구에서 판매보수 차이로 인해 기준가격이 다르거나 판매수수료가 다른 여러 종류의 집합투자증권을 발행하는 ‘종류형집합투자기구’를 규정하고 있다”며 “이는 판매보수 차이로 인해 기준가격과 판매수수료가 다른 증권은 서로 종류가 다름을 전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의 시리즈펀드는 개별 펀드의 판매수수료와 운용보수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파인아시아운용이 같은 시리즈로 같은 종류의 증권을 발행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임직원들의 진술에 따르면 파인아시아운용은 펀드 판매직원이 미리 확보해놓은 특정 채권을 대상으로 투자자를 모집하면서 펀드당 투자자 수를 49명 이하로 제한했다”며 “개별 펀드의 구성도 동일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독 회사채에 투자한 시리즈펀드를 예로 들었다. 이 운용사는 2017년 6월 21일부터 27일까지 사모펀드 네 개를 설정해 그 해 6월 16일에 발행된 ‘한독31’에 투자했다. 적게는 47명, 많게는 49명의 투자자를 둔 각 펀드는 모두 ‘한독31 99%, 현금 1%’로 구성됐고 상환일은 2018년 6월 19일로 똑같았다. 재판부는 “선취판매수수료 또는 신탁보수가 달랐지만 그 차이는 0.01%나 0.02%에 불과했고 펀드별 총 보수 및 비용, 예상 수익률과 목표 수익률은 모두 같았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가 금융당국 손을 들어주면서 금융투자업계엔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이 이 여세를 몰아 최종 승소하게 되면 이번 사건과 비슷한 유형의 사모 시리즈펀드에 더욱 엄격한 규제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김진성/오현아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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