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서 공정거래위원회발(發) 규제 강화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플랫폼업계 대관(對官) 담당 임직원은 초긴장 상태다. 문재인 정부 때 공정위가 추진하던 ‘온라인 플랫폼 중개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온플법)’ 도입 가능성까지 거론돼 더 그렇다.
이 법안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플랫폼 정책 기조가 자율 규제 쪽으로 전환됨에 따라 백지화할 것이란 시각이 우세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카카오 먹통’ 사태를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업계에선 “카카오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말까지 나온다.
문제는 상당수가 업계 실상을 무시한 탁상 법안이어서 부정적 파급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정부안과 대다수 의원입법안에 담긴, 플랫폼사업자가 입점 업체와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 내용이 담긴 법안들이 시행되면 플랫폼사업자는 표준계약서에 상품 노출 순서 및 기준까지 담아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상품 노출 순서와 그 기준은 플랫폼사업자에겐 핵심 영업기밀”이라며 “이를 밝히라는 건 삼성전자에 반도체 설계를 공개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토로했다. 이를 악용하는 입점 업체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이 마련한 플랫폼 규제 법안은 타깃을 거대 플랫폼에 맞췄다. 연 순매출 또는 시가총액이 6000억달러(약 800조원) 이상이거나 월간 이용자가 최소 5000만 명 이상인 플랫폼을 규제 대상으로 한정했다. 이 기준을 만족하는 기업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등 네 곳뿐이다.
공정위가 연내 도입을 추진하는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심사지침은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의 모든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다. 당근마켓과 컬리 등 아직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곳도 플랫폼을 운영한다는 이유로 ‘규제 그물’에 들어갈 처지에 놓였다.
유럽연합(EU)은 빅테크 규제를 도입한 취지 자체가 한국과 정반대다. 유럽은 검색 시장의 90% 이상을 구글이, e커머스 시장의 30% 이상을 아마존이 장악했다.
그런 만큼 글로벌 플랫폼기업의 진격으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자국 플랫폼기업을 규제하려는 한국과는 규제의 취지와 목적 자체가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국내 전체 유통시장 규모(소매판매액)는 408조4400억원이다. 아마존의 올 1~3분기 누적 매출 3647억달러(약 488조원)보다 적다.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국내 시장이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상황에서 플랫폼기업에 해외 진출은 필수인데, 규제가 예기치 않은 악재로 떠오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플랫폼업은 현지 정부 규제와 정서 등의 문제로 해외 업체가 진출하기 쉽지 않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로 예기치 않은 위법 상황이 발생하면 해외 진출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자력으로 해외 판로를 개척하기 어려운 입점 중소기업까지 영토 확장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온플법이 제정되면 플랫폼에 입점한 영세·신규 업체의 거래액이 약 13조4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한 연구 결과를 지난해 내놓은 바 있다. 유 교수는 이 연구에서 해당 업체들의 고용 인원도 22만 명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박종관/박동휘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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