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회계법인의 권력 남용 경계해야

입력 2022-11-30 17:30   수정 2022-12-01 00:15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회계 투명성 평가에 따르면 한국은 2017년 63개국 중 63위로 꼴찌였다. 2018년 62위로 한 계단 올랐고, 이후 2019년(61위), 2020년(46위)까지 3년 연속 상승했다. 하지만 지난해 다시 53위로 내려갔다. 올해 들어 시중은행을 비롯한 몇몇 기업에서 잇달아 거액의 횡령 사건이 터진 것이 해외에서 한국을 보는 시각에 반영됐을 것으로 풀이된다. 6년 전 5조원대 분식회계로 커다란 충격을 안긴 대우조선해양을 떠올리게 한다. 공교롭게도 이들 사건에는 굴지의 한 회계법인이 연루돼 있다. 이 회계법인은 대우조선해양의 외부감사인을 맡았는데 분식회계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한 시중은행도 횡령 기간인 2012~2018년 회계감사를 담당해 모두 ‘적정’ 의견을 냈다.

4년 전 도입한 신외부감사법은 회계법인의 독립성을 높여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자는 게 주된 취지였다. 이전에는 기업이 회계법인을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었다. 지금은 6년 동안 자유롭게 선정한 이후 3년 동안 증권선물위원회가 외부감사인을 지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자유선임감사와 지정감사를 혼합해 기업의 재량은 일정 수준 보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회계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회계법인들의 ‘회계 권력’만 높여줬을 뿐 기대한 효과는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많다. 자유선임 기간 회계법인을 자유롭게 선정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어려워서다. 자유선임 때 배제된 회계법인이 지정감사를 맡을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감사비용도 4년 전보다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고 하소연한다.

제도를 바꿔도 왜 새로운 문제만 양산되는 것일까. 전문가들 사이에선 회계법인의 권력 남용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밀착한 기업에는 편의를 봐주고 그렇지 않은 기업에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회계법인의 부실 감사 건수를 매년 공시하고 있다. 2017년부터 최근 6년간 징계받은 건수가 30여 건에 달한다. 눈여겨볼 점은 징계가 몇몇 특정 대형 회계법인에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교보생명이 수년째 주주 간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것도 회계법인의 도덕적 일탈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분쟁은 외국계 사모펀드의 지분을 교보생명 대주주가 되사줘야 한다는 풋옵션 계약에서 비롯됐다. 주식 가치 평가가 핵심 쟁점이 됐다. 사모펀드는 한 회계법인에 가치 산정을 의뢰했고 이 회계법인은 평가 기준일을 임의로 설정하는 방식으로 고가의 가치를 매겼다. 의뢰인인 사모펀드에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교보생명 대주주는 즉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로 인해 교보생명 대주주와 사모펀드는 아직도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멀쩡한 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평판이 나빠지고 기업공개(IPO)는 갈수록 차질을 빚고 있다. 주주 간 분쟁이 길어질수록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금융위원회는 이번주 한국공인회계사회를 대상으로 종합감사를 한다. 엄정한 감사와 함께 회계업계의 자정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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