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바닥,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건설업계 '줄도산 공포'

입력 2022-12-01 07:33   수정 2022-12-01 17:24


민주노총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가 장기화하며 전국 건설 현장이 멈춰 서고 있다. 올해 초부터 원자잿값 상승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경색 등으로 체력이 깎인 상태에 운송 거부까지 발생하자 줄도산 공포마저 감돈다.

1일 대한건설협회와 한국주택협회에 따르면 전국 985개 공사 현장 가운데 절반이 넘는 577곳에서 레미콘 타설이 중단됐다.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로 시멘트가 출하되지 못했고, 시멘트를 원료로 하는 레미콘 공장마저 가동이 중단돼 공사 현장에 레미콘 공급이 끊긴 탓이다.

이달 분양에 나서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 '올림픽파크 포레온'의 골조 공사도 멈출 처지다. 현대건설 김재돈 둔촌주공 현장소장은 "골조 공사는 형틀·철근·콘크리트 타설 공사 세 가지로 구성되는데, 현재 타설을 멈추고 형틀과 철근 공사만 하는 상황"이라며 "그나마도 모든 동에서 형틀과 철근 공사가 마무리되고 있어 이번 주가 지나면 골조 공사는 모두 중단된다"고 설명했다.
일주일 넘어선 운송 거부…전국 577곳서 레미콘 타설 중단
85개 동이 지어지는 올림픽파크 포레온은 하루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BCT) 600대 분량의 시멘트가 필요하다. 다만 화물연대 운송 거부 여파에 레미콘 납품 업체가 필요량을 공급하지 못하면서 콘크리트 타설 공사가 멈췄다. 필요한 양의 콘크리트를 한 번에 부어야 건물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기에 레미콘을 그때그때 일부만 붓는 식으로 공사할 수도 없다.


시멘트협회는 국내 하루 시멘트 수요가 약 18만~20만 톤이지만, 화물연대 운송 거부로 출하량이 10%가 채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화물연대 운송 거부가 일주일을 넘어서면서 수도권 레미콘 공장은 대부분 원재료 재고가 바닥나 가동이 중지됐고 공사를 멈추는 건설 현장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주택협회는 이번 주 전국 건설 현장 128곳이 더 멈춰설 것으로 집계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준공을 1~2개월앞둬 골조 공사가 대부분 마무리된 곳 외에는 모두 운송 거부 영향권"이라며 "화물차 운송 자체가 멈췄기에 개별 품목에서 파업이 벌어진 것보다 충격이 크다"고 토로했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도 "이번 주 중으로 골조 작업 근로자들이 철수할 예정"이라며 "운송 거부가 장기화하면 준공에도 영향을 줄 텐데 발주처나 입주예정자들이 이런 사정을 고려해줄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8일과 30일 두 차례에 걸쳐 화물연대와 교섭을 진행했지만 모두 성과 없이 끝났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영구 시행과 품목 확대를, 국토부는 품목 확대 없는 3년 연장을 제시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운송료를 보장하는 제도다. 2020년 3년 일몰제로 도입돼 올해 말 종료를 앞두고 있다.

두 차례 교섭에도 양측의 입장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교섭이 모두 결렬되면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화물연대와의 대화 자체를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화물연대도 정부가 29일 발동한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하겠다고 나섰다. 협상에서 대결로 국면이 전환된 것이다.


원 장관은 "이런 식의 대화는 필요 없다. 걸핏하면 산업을 세우는 단체라면 해체하고 새로운 산업구조를 세우는 게 맞다"며 "근본적으로 공급 구조 자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의 핵심 요소인 가격을 일방이 입맛대로 고정하고 마음에 안 들면 중지시킨다"며 "이런 식의 시장구조는 어디에도 없다. 사회주의 나라에서도 이렇게 안 한다"고 강조했다.
원희룡 "구조 들여다봐야"…국토부 vs 화물연대 대결 국면
화물연대가 확대와 영구 시행을 주장한 안전운임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제도인지에 대해 문제 제기와 검토가 있다"며 "(폐지를 포함해) 다각도로 검토할 수 있다"고 맞불을 놨다. 또 운송 거부 화물차 유가 보조금 제외는 물론 운송 거부 사태에 따른 손해배상소송 검토 등 화물연대에 대한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화물연대도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하겠다는 방침이다. 화물차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은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화물연대의 연이은 운송 거부에 대한 비상 대응책으로 마련됐다.

화물연대 시멘트 화물 노동자들은 전일 인천 중구 인천한라시멘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헌법적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업무개시명령을 정부의 반헌법적 탄압으로 규정하고 "더 힘찬 총파업 투쟁으로 맞서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인천본부도 "업무개시명령은 국제사회가 합의한 노동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시대착오적 조치"라고 비판했다.


양측의 강 대 강 대치 국면이 지속되면서 건설 업계는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가뜩이나 올해 초부터 원자잿값이 급등하며 공사비가 올라 건설사들의 수익성이 악화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도급 공사에서 자잿값이 10% 상승하면 건설사 영업이익률은 3%포인트 하락한다. 특히 교섭력이 낮은 중소형 건설사들은 자재 확보 자체가 어려워져 자금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자금 조달도 어려워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2012년 말 37조5000억원에서 지난 6월 말 112조2000억원으로 3배 늘었다. 이 기간 은행은 24조5000억원에서 28조3000억원으로 큰 변화가 없었지만, 보험사는 4조9000억원에서 43조3000억원으로, 여신전문금융사(여전사)는 2조8000억원에서 26조7000억원으로 치솟았다. 저축은행과 증권사 대출 잔액도 각각 10조7000억원, 3조3000억원에 달한다.
지역 중견 건설사 최종 부도…"중소 건설사 체력은 이미 바닥"
건설사들이 은행에서 대출받지 못하면서 고금리를 감수하고 제2금융권에 손을 벌린 것인데, 제2금융권도 최근 부실화 우려에 연말까지 대출을 금지했다. 제1금융권과 제2금융권 모두에서 대출이 막힌 셈이다.


자금시장이 경색되더라도 분양대금이 원활하게 유입되면 견딜 수 있지만,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며 미분양 물량이 급증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0월 말 전국 미분양 주택은 전년 대비 235.5% 증가한 4만7217가구다. 이 기간 수도권은 490% 늘어 7612가구가 됐고 지방은 209.8% 늘어난 3만9605가구를 기록했다.

이 여파에 경남 창원의 중견 건설사 동원건설산업이 최근 부도 처리됐다. 동원건설산업 도급순위는 경남 18위, 전국 388위다. 장기영 동원건설산업 대표는 "제도권 금융에서 자금이 조달되지 않아 연 30%가 넘는 고리 사채를 동원하는 등 노력을 다했지만 높은 이자를 견디지 못했다. 협력 업체와 관계 업체가 연쇄 부도 위기에 처하게 돼 죄송하다"고 말했다.

대형 건설사도 위태롭다. 도급순위 상위권 A 건설사는 최근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 유상증자를 실시하고 계열사로부터 자금을 수혈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도 대출이 안 나오는 상황인데 중소 건설사는 어떻겠느냐"며 "대출은 막혔고 공사비와 금리가 상승하며 현금을 융통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체력이 다한 상황에 운송 거부로 공사까지 늦춰지니 중소 건설사들은 버티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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