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무대에 흐르는 잠시의 침묵. 하나둘 조명이 켜지고 배우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초대된다. 연극, 뮤지컬 등 무대예술이 주는 환희는 스크린이 주는 감동과 차원이 다르다. 12월만큼 무대에 가까이 가기 좋은 계절도 없다. 차분히 사색에 잠겨 한 해를 마무리하거나, 화려한 축제 분위기에 빠져볼 수도 있다. 올해는 3년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엔데믹이 겹치며 공연 시장의 열기가 모처럼 뜨겁다. 꾸준히 사랑받아온 스테디셀러 공연부터 국내 처음 선보이는 초연작까지 그 목록도 화려하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크게 흥행한 뮤지컬 ‘물랑루즈!’는 이달 20일 개막한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 최초의 공연이다. 1890년대 프랑스 파리에 있는 클럽 ‘물랑루즈’ 최고의 스타 ‘사틴’과 젊은 작곡가 ‘크리스티안’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브로드웨이에서 사전 제작비 2800만달러(약 395억원)를 투입했을 만큼 규모가 큰 작품이다. 제74회 미국 토니상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10관왕을 기록했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팝송을 매시업(두 개 이상의 노래를 섞어 하나로 만드는 것)한 노래들로 넘버가 구성됐다. 마돈나, 시아, 비욘세, 아델, 리한나 등의 히트곡 70여 개가 쓰여 익숙한 곡들이 흥을 돋운다. 미국 현지 캐스팅 배우들이 녹음한 뮤지컬 앨범은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오리지널 창작진 및 제작진이 직접 참여해 제작된다. 무대, 의상, 소품, 가발 등 대부분을 미국과 호주, 영국, 독일, 프랑스 등 해외 지정 제작소에서 만들었다.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내년 3월 5일까지 계속된다.
뮤지컬 마니아들이 기다려 온 명작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도 7년 만에 개막한다. 뮤지컬 ‘캣츠’와 ‘오페라의 유령’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뮤지컬 ‘에비타’ ‘아이다’의 작사가 팀 라이스가 젊은 시절 합심해 만든 작품. 1971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후 세계 각국에서 공연됐다. 예수의 마지막 1주일을 그린 작품으로 죽음을 앞두고 고뇌하는 예수의 인간적인 모습과 제자 유다 등 그를 둘러싼 여러 인물과의 갈등을 그렸다. 강렬한 록 음악으로 구성된 넘버가 특징이다. ‘겟세마네’ ‘수퍼스타’ 등 유명한 넘버가 많다. 지난달 개막해 내년 1월 15일까지 서울 신사동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한다.
스테디셀러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도 돌아왔다. 1930년대 불황기 미국 브로드웨이를 배경으로 무명의 앙상블 배우가 주연 스타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군무와 탭댄스가 화려해 쇼 뮤지컬의 정석으로 꼽힌다. 특히 각각 2018년과 2017년 같은 작품에서 앙상블로 데뷔한 배우 유낙원과 이주순이 이번 시즌 주연인 페기 소여와 빌리 로러를 연기한다. 내년 1월 15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국내 창작뮤지컬의 전설과도 같은 ‘영웅’도 연말 아홉 번째 시즌으로 개막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그린 작품이다. 독립투사의 뜨거운 열정과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인 고뇌를 그려 호평받았다. 오는 21일 개막해 내년 2월 28일까지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 LG시그니처홀 무대에 오른다.
일제강점기 하와이로 이주한 동포의 역사를 다룬 뮤지컬 ‘알로하, 나의 엄마들’도 연말 무대를 달구는 중이다. 서울시뮤지컬단의 올해 세 번째 창작뮤지컬로, 국내 대표 아동청소년문학 작가 이금이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었다. 약 100년 전 중매쟁이가 가져온 사진 한 장만 보고 하와이로 시집간 이른바 ‘사진 신부’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이달 11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원로배우 이순재가 직접 연출하는 연극 ‘갈매기’도 관객을 찾는다.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는 사실주의 연극의 교과서로 꼽힌다. 재능을 인정받고자 하는 작가 지망생 뜨레블례프가 연인이자 배우 지망생인 니나와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선보이지만 관습의 벽에 부딪히며 참패를 맞는 내용이다. 배우 이순재의 66년 연극 인생을 담은 무대다. 오는 21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개막한다.
코미디극을 즐기고 싶다면 방송인 겸 영화감독 장진이 연출하는 연극 ‘서툰 사람들’이 있다. 1995년 초연해 2007년, 2012년 대학로에서 공연할 때마다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한 흥행작이다. 어설픈 도둑이 어느 집에 들어갔다가 못 빠져나와 밤새 집주인과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서울 동숭동 예스24스테이지에서 내년 2월 19일까지 공연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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