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온도가 영하 15도까지 곤두박질친 1일 아침 서울 영등포 쪽방촌. 나이 지긋한 어르신 몇이 20L짜리 난방용 등유를 집안으로 옮기느라 분주히 골목을 오갔다. 이화경 씨(80)는 “지원센터의 등유 공급이 미뤄져서 당장 내일부터 냉골방에서 자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주민은 “화물연대 파업 난리 통에 등유를 구하느라 한참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화물연대본부 파업의 파장이 사회 취약계층의 일상을 할퀴고 있다.
쪽방촌 주민뿐 아니라 건설 일용직 노동자 피해도 극심해지고 있다. 이날 새벽 서울 남구로역 인근에 있는 인력시장에 모인 300여 명 중 절반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집으로 돌아갔다. 파업과 함께 시멘트 운송에 차질이 생기고 건설 현장이 멈춰서면서 일감이 끊겼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으로 가는 봉고차를 먼저 타기 위해 여러 차례 몸싸움도 벌어졌다. 레미콘 타설(打設)이 안 돼 당분간 현장 재가동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목공일을 하는 이동화 씨(53)는 “원래 일하던 건설 현장이 파업 여파로 멈춰 조금이라도 돈을 벌기 위해 나왔다”며 “최근 몇 년 새 일자리 부족이 가장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서울 주요 지역의 인력사무소 40곳을 취재한 결과 당분간 일자리가 없다고 답한 곳이 28곳(70%)이었다. 일거리가 있다고 답한 인력사무소도 경력이 아닌 신입은 뽑지 않는다고 했다. 파업 직격탄을 맞은 서울 방배동의 주상복합아파트 현장도 하루 60명 정도 쓰던 인력을 절반으로 줄였고, 둔촌동 둔촌주공 공사 현장 역시 일용직 근로자 채용을 중단했다.
파업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악화하면서 일부 화물차주의 업무 복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서민들의 불안한 시선은 여전하다. 이날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총파업 이전 대비 60%대 중반까지 회복됐고 시멘트 출하량도 소폭 늘었다. 한 아파트 건설 현장 노동자는 “파업이 오래가면 등 터지는 건 서민”이라며 “협상이 빨리 타결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전북 군산에 있는 닭 10만 마리 규모의 A양계장은 1일 남은 사료를 모두 소진했다. 부패 우려로 열흘치 안팎의 사료를 비축하는데 파업이 8일째 이어지면서 재고가 다 떨어졌다. 농장주 이모씨는 “군산 지역에 조류인플루엔자(AI)가 유행하던 때만큼이나 농장 운영이 힘든 상황”이라며 “누구를 위한 파업인지, 왜 농장주들이 피해를 봐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 남양주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이모씨 역시 소 먹이용 풀 재고가 이틀치밖에 남지 않아 비상이 걸렸다. 이씨는 “사료 가격(현재 5t 트럭 기준 900만원)이 작년의 두 배 이상으로 뛴 데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웃돈까지 주고 소 먹이를 구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찮다”며 “자칫하면 소를 굶겨 죽일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영원 전국한우협회 정책지도국장은 “시멘트 분야에 내려진 업무개시명령을 사료 운반 등의 분야로 확대하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배달기사들은 휘발유 대란에 대비해 연료 확보에 나섰다. 일부 기사는 휘발유를 사서 사무실 등에 가져다 두고 있다. SNS 등을 통해 재고가 있는 주유소를 공유한다. 이날 기준 휘발유는 7일분, 경유는 9일분이 남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광식/구교범/김우섭/원종환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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