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의 선의는 90여 년 뒤 증손자에게 종합부동산세 폭탄으로 돌아왔다.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었던 민씨는 올해 2200만원의 종부세를 내라는 고지서를 받았다. 주택이 아니라 부속토지만 보유해도 주택을 소유한 것으로 보는 ‘황당 세법’ 때문이다.
1가구 1주택자가 주택 부속토지를 보유한 경우 그곳에 있는 주택은 주택 수 산정에서 빼주는 특례가 있지만 얼마 전 아내에게 다른 사람의 주택이 딸린 토지 일부를 증여하면서 아내가 ‘주택 소유자’로 간주됐고, 그 결과 민씨도 1가구 1주택자 지위를 잃었다. 민씨는 “평생을 1주택자로 살아왔는데 무허가로 지어진 남의 집 때문에 세금이 200만원에서 수천만원이 된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역삼세무서 7층 재산세과 앞에서 만난 80대 노부부는 격앙돼 있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 출신이라는 남편(84)은 “우리 같은 노인네들이야 정부가 칼자루(종합부동산세)로 모가지를 내려치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이렇게 크게 칼자루를 휘두르면 어떡하느냐”고 했다. 110만원이 찍힌 종부세 고지서를 들고 있던 그는 “소득이라고는 연금밖에 없는데 무슨 돈으로 세금을 내느냐”며 “베트남에서도 살아 돌아왔는데 종부세로 내 모가지가 날아갈 판”이라고 토로했다. 세무공무원이 종부세 부과 방식을 설명하며 “제대로 부과된 것”이라고 하자 “우리 같은 노인들이 알 길이 있나…”라며 아내의 손목을 잡아끌며 발길을 돌렸다.
같은 건물에 있는 서초세무서를 찾은 한 납세자는 “아버지가 2018년 건강이 악화되는 바람에 주택을 증여받아 3주택자가 돼 3년간 3억원의 종부세와 재산세를 냈다”고 했다. 그는 “집이란 게 하루아침에 팔아치울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 멀쩡히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을 어떻게 팔 수가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 삼성동에 아파트 한 채를 보유해 263만원의 종부세를 부과받았다는 60대 후반의 남성은 “정치권에선 1주택자의 종부세를 줄여줄 것처럼 말하더니만 결과적으로 작년과 세금이 비슷하게 나왔다”며 “이게 정말 맞는지 알아보려고 세무서를 찾았다”고 했다. 정부가 올해 종부세 부담 완화대책을 내놨지만 불만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문재인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 등으로 공시가격이 급격히 상승한 영향이다. 더불어민주당이 3억원의 특별공제(공제한도 11억원→14억원)를 무산시킨 것도 세부담 확대로 이어졌다.
마포세무서를 찾은 한 70대 여성은 “집 하나에 평생 살면서 판 적도 없는데 집값 올랐다고 세금만 올려대고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화를 냈다. 또 다른 60대 후반 여성은 “집값은 떨어지고 있는데 공시가격이라는 정체 모를 기준이 올랐다는 이유로 세금이 늘어나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의진/강진규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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