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민법 제162조 ①항)
민법 조문을 그대로 옮긴 것인데, 얼핏 보기에도 비문(非文)임이 드러난다. 비문이란 어법에 맞지 않아 틀린 문장이다. 우리 민법에는 이런 오류가 200개도 넘는다고 한다. 민법이 1958년 제정 공포됐으니 60년 넘게 방치돼온 셈이다. 민법은 대한민국 법률 가운데 가장 조항 수가 많다. 1118조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특히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이라, 법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법률이다. 국립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장을 지낸 김세중 박사가 민법 개정 운동에 나선 까닭이기도 하다.
그의 지적을 듣다 보면 민법 비문의 유형이 어쩌면 그리도 일반 글쓰기에서의 오류와 똑같은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예문 가)는 이른바 ‘등위접속 오류’의 대표적 사례에 해당한다. ‘-과(와), -나, -며, -고, -거나’ 등이 국어의 등위접속어다. 이들은 문장 안에서 앞뒤에 오는 말을 대등하게 연결해주는 문법요소다. 이때 ‘대등하게’에 주목해야 한다. 접속어를 사이에 두고 명사면 명사, 동사면 동사가 오고 구는 구끼리, 절은 절끼리 어울려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수출과 수입이~’ ‘늘어나거나 줄어들고~’와 같이 앞뒤를 같은 값으로 연결해야 한다. 간단한 원칙이지만 실제 글쓰기에서는 이를 잘 지키지 않아 왕왕 비문이 생긴다.
가)는 요약하면 ‘A는 B거나 C로도 해산한다’ 문장이다. 이때 B와 C에 같은 값의 말이 와야 한다. 예문에선 ‘(사람이 없게 되다)+(총회의 결의)’, 즉 ‘절+명사구’로 이어져 글의 흐름이 어색해졌다. 앞뒤를 똑같이 ‘절’ 형태로 연결해야 자연스럽다. <‘…사람이 없게 되’거나 ‘총회에서 해산을 결의한’ 경우에도 해산한다.>
일반적인 글쓰기에서도 이런 오류는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일자리 회복세가 지속하고 있다” 같은 문장도 흔히 접하는 비문이다. ‘지속하다’는 타동사로, ‘~을 지속하다’가 바른 용법이다. ‘회복세’를 주어로 쓰려면 ‘~가 지속되다’처럼 피동형으로 써야 한다.
“안동시의 조치는 주민 편익과 지역경제를 우선한 용기 있는 결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서는 반대로 자동사를 타동사처럼 썼다. ‘우선하다’와 ‘우선시하다’는 전혀 다른 말이다. ‘우선하다’는 자동사다. “능력과 실력이 우선하는 사회”처럼 쓴다. 이를 타동사로 쓰려면 ‘우선시하다’라고 한다. “그는 학벌보다 능력을 우선시한다.”
어법을 벗어나면 글이 어색해지고 이는 곧 세련되지 못한, 격이 떨어지는 표현이 된다. 광복 77년, 민법 제정 64년이 지났는데 우리 민법에는 여전히 일본어 오역이 곳곳에 남아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 국민은 바른 민법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그의 외침에 21대 국회가 응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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