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일본에서 출간된 <비즈니스 교양으로서의 반도체(ビジネス養としての半導)>는 여러모로 주목할 만한 책이다. 반도체 전문가이자 전자부품 납품업체 칩원스톱의 대표인 고우죠 마사유키는 일반인이 알아야 하는 ‘반도체에 대한 모든 것’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매일같이 언론에서 반도체 관련 뉴스가 들려오고, 반도체 공급 차질로 자동차산업 등 여러 분야가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대부분 사람은 반도체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책은 반도체의 역사와 업계 구조, 시장의 변화,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앞으로 반도체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소개한다.
진공관에서 시작해 트랜지스터를 거쳐 IC칩에 이르기까지 반도체는 속도와 용량 면에서 늘 예상을 뛰어넘는 발전을 거듭해왔다. 반도체는 이미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과 같은 전자제품, 자동차나 지하철과 같은 교통수단, 그리고 주변의 모든 것이 반도체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팬데믹 상황에서 비대면으로 인한 전자통신기기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다. 전기차(EV),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솔루션, 메타버스 등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로 반도체 시장은 앞으로도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세계 경제의 중심인 반도체, 라이프스타일과사회 인프라의 핵심인 반도체, 문명을 발전시키는 반도체산업, 국제 전략 물자로서의 반도체, 그리고 반도체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책에는 오랜 기간 반도체산업에 종사한 저자의 지식과 경험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특히 일본 반도체산업 몰락 원인으로 지목되는 ‘미·일 반도체 협정’에 대한 내용은 흥미롭다.
1980년대 일본 주요 반도체 회사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반도체 종주국인 미국을 위협했다. 원가 경쟁력을 내세워 일본이 미국 시장을 공략하자 미국 반도체 회사들의 압박과 로비가 이어지면서 1986년 덤핑 금지 협정이 체결됐다. 10년 뒤 협정은 종료됐지만 그사이 일본 반도체산업은 몰락했고, 미국 반도체 업체들은 자국 내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삼성)이 반사이익을 얻으며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강자로 도약했다.
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고도의 전략 게임이 벌어지는 가운데 일본에서 이 책이 출간돼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반도체 최강국의 영광을 되찾아오겠다는 일본의 결의가 느껴진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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