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식 추기경(71·사진)은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를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유 추기경은 한국 천주교 역사상 네 번째 추기경이다. 올 8월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추기경은 가톨릭교회 교계제도에서 교황 다음으로 큰 권위와 명예를 가진 자리다. 지난해부터는 전 세계 모든 성직자와 신학생을 관장하는 교황청 성직자부의 장관도 맡고 있다. 이번 간담회는 유 추기경이 바티칸 입성 후 1년4개월 만에 휴가차 한국을 방문하면서 마련됐다.
유 추기경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위로로 간담회를 시작했다. 그는 “‘(관계자들이) 각자 임무를 다했다면 이렇게까지 큰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다음에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합당한 사후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그는 개인적으로 “모험이 지속되는 나날들”을 보냈다고 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을 맡으면서 두렵고, 떨리고,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이 났어요. 그래서 교황님께 ‘도대체 제게 무엇을 원하시느냐’고 물어봤는데 딱 한 마디만 하시더군요. ‘십자가’. 어려운 길이 하나님이 원하는 나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걷되, 아니라면 빨리 제가 알아채고 바뀔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거죠.”
교황의 방북 가능성도 언급했다. 유 추기경은 “교황님이 지난 8월 KBS 인터뷰에서 ‘같은 언어를 쓰고 형제 같은 남북한이 70년 분단돼 있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다. 남북이 같은 길을 가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하셨다”며 “교황님은 언제든 오실 준비가 돼 있지만, 모든 것은 북한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올해 만 86세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건강에 대해선 “무릎이 좀 안 좋긴 하지만, 오전 4시에 일어날 만큼 여전히 부지런하고 기억력이 굉장히 좋으시다”고 덧붙였다.
유 추기경은 이날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전용기에서 추락하는 합성 이미지를 페이스북에 올려 논란이 된 박주환 신부 등 사제들의 소셜미디어 이용 문제에 대해선 “아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며 “사제들의 내면적 성숙을 가르치는 일의 중요성을 시간이 갈수록 크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성소수자 문제에 관해선 “가톨릭교에서는 사람을 첫 번째로 존중하기 때문에 성소수자란 이유로 불리한 대우를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유 추기경은 내년 초까지 대전교구에 머무를 계획이다. 교황청 장관에 임명되기 전 몸담았던 곳이다. 오는 8일 충남 당진의 솔뫼성지 ‘기억과희망 성당’에서 열리는 서임 기념 감사 미사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