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세난' 속 전셋값 낮춰 계약, 전년비 50% 급증

입력 2022-12-04 16:54   수정 2022-12-05 01:59

전셋값 하락으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100% 지급하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깊어지고 있다. 전세 시장은 집주인이 전세 재계약을 하면서 받은 돈으로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는 구조인데, 전세 시세가 하락하면 종전 세입자에게 돌려줄 돈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으로 한 달간 계약을 갱신한 전국 전세 거래 가운데 종전 보증금 대비 낮은 가격으로 갱신한 계약은 125건에 달했다. 전년 동월 84건 대비 49%가량 증가한 수치다. 지역별로는 서울(32건), 수도권(경기 27건, 인천 7건), 대구(31건)와 세종(8건)에서 많았다.

전세 가격에 대한 위험 신호는 최근에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제때 주지 못해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 가입자에게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보증금을 대신 물어주는 ‘대위변제’ 건수와 금액이 1년 새 늘었다. 지난 10월 전세금 보증 사고 규모는 704건, 1526억원에 달해 전년 동월(243건, 527억원) 대비 세 배가량 증가했다. 매매보다 전세 낙폭이 더 두드러진 상황도 역전세난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은 3.8% 떨어진 반면 같은 기간 전세가격은 4.3% 하락했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서울 성북구 ‘종암2차 SK뷰’의 경우 전용면적 119㎡의 전셋값은 6억3000만원으로 2년 전(10억8000만원) 대비 41%나 하락했다. 같은 기간 신당푸르지오도 전용 145㎡짜리 전세 매물 역시 7억원에서 5억원으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 때문에 ‘역월세’라는 신종 임대차 거래 방식까지 생겨나고 있다. 전세 만기가 도래한 세입자가 전셋값을 시세 흐름대로 1억원 낮춰달라고 할 경우 전세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집주인은 은행 이자 수준으로 20만~30만원가량 월세를 매달 세입자에게 주면서 계약을 연장하는 개념이다.

대구 수성구 A공인 관계자는 “세입자에게 매달 월세를 주는 경우 혹은 기존에 계약한 전세금과 현재 전세금 시세의 차액에 대한 이자를 일시불로 주고 재계약하자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매매와 전세가격이 동반 하락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세가율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높다”며 “10월 기준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율은 62%로, 리먼 사태발(發) 금융위기 때인 2008년 9월(41%), 하우스 푸어 사태가 절정에 달했던 2012년 9월(55%)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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