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이 2년 연속 6000억달러를 넘어서는 사상 최대 수출 실적을 달성할 전망이다. 코로나19 봉쇄 정책으로 인한 중국발(發) 경기 둔화에 우크라이나전쟁, 세계적 금리 인상 등 어려운 대외 여건이 겹친 와중에도 성장세를 유지하며 수출 강국의 위상을 높이게 됐다. 전기차, 차세대 반도체 등 8대 신산업 품목을 중심으로 한 수출의 고부가가치화가 톡톡히 역할을 했다.
내년이 관건이다. 올해보다 더 녹록지 않은 통상 환경이 펼쳐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끊임없는 경제 영토 확장과 더불어 디지털 전환, 안정적 공급망 구축 등을 통해 미래 수출 산업 기반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더불어 해외 기업이 몰려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일도 과제로 꼽힌다. 한국무역협회와 한국경제신문사는 ‘제59회 무역의 날’을 맞아 ‘한국 무역의 성과와 2023년 과제’를 주제로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좌담회를 열었다. 정만기 무역협회 상근부회장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김병훈 에코프로 대표, 채성호 쓰리에이씨 대표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허원순 한경 논설위원이 사회를 맡았다.
결과적으로 올해 수출은 상당히 양호했다는 생각이지만, 동시에 무역적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문제입니다. 수입액 증가율이 25.9%로, 수출액을 앞질렀던 탓입니다. 지난해 1~8월 세계 교역의 52% 이상을 차지하는 10대 교역국 중 한국이 수입 증가율로는 1위였고, 올해는 이탈리아에 이어 2위였습니다. 이는 에너지 수입 비중이 높은 경제 구조에서 기인합니다. 한국의 총수입 대비 에너지 수입 비중은 1년 새 8.4%포인트 뛰었습니다. 주요국 중에선 일본(9.3%포인트)을 제외하면 가장 큰 폭입니다. 이전 정부에서 원자력 발전을 지양하고 액화천연가스(LNG) 등 재생에너지 수입량을 늘리면서도 전기요금은 동결시켜 ‘에너지 과소비’ 구조를 초래한 영향이 큽니다.
▷안덕근 본부장=올해는 굉장히 좋은 실적을 보였지만, 내년에는 글로벌 거시경제가 위기로 접어들 전망이어서 어려움이 더해질 것입니다. 다행인 건 미국, 중국을 비롯한 주요 무역 파트너들이 한국과의 경제 동맹 관계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데 예외 없이 공감대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계기로 여러 나라와 협상 중인데, 통상 관계에서만큼은 안정적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 신뢰가 형성돼 있습니다. 한국이 통상과 투자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국제 사회에 부각하는 일을 새 정부 최대 숙원 사업으로 두고 양자 협상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김흥종 원장=최근 싱가포르와 디지털동반자협정(DPA)에 정식 서명한 것은 DPA 관련 첫 삽을 떴다는 의미에서 큰 성과라고 봅니다. 이외에도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 가입을 위한 협상이 지속해서 추진 중이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협상에도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입니다. 무엇보다 통상 분야에서 경제안보가 중요한 개념으로 떠올랐다는 것이 올해의 주요 특징일 것입니다. 새 정부는 국가안보실에 경제안보비서관실을 신설했고,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주요 정부 부처도 경제안보 관련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연구기관, 업계가 미·중 갈등 관련 이슈를 원활히 공유하며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채성호 대표=3년 전부터 고객 다변화와 사업 다각화를 동시에 추진한 성과가 지난해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연평균 수출액이 30%씩 늘고 있습니다. 고품질 제품과 함께 글로벌 고객을 맞이할 준비를 탄탄히 하면 언제든지 기회는 온다는 생각입니다. 정부 지원을 받아 해외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참여해 해외 업체들과의 접촉면을 늘렸던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안 본부장=한국은 분명 아시아 시장에서 매력적인 국가입니다. 세계의 사람과 자본, 기술을 끌어들일 만한 산업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돼야 합니다. 삼성과 LG가 소니를 이길 수 있는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구글맵도, 페이팔도, 우버도 진입할 수 없는 환경에서 벗어나 세계에서 경제성과 성장성이 가장 뛰어난 기업이 몰리는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57개국 외에 중동, 남미, 독립국가연합(CIS) 등 새로운 시장을 뚫고 들어가 경제 영토를 계속해서 넓히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기업들도 FTA를 맺지 않은 국가를 마치 정글이나 사막처럼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넓은 시야로 공격적인 다변화 전략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 원장=KIEP는 내년 세계 경제가 2.4%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글로벌 경제 위기의 여파가 있었던 2010년대에도 세계 경제 성장률은 3%대를 지켰습니다. 경제 상황이 그만큼 어려워질 것을 전제하고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대전환 시대를 맞아 DEPA 등을 통해 디지털전환을 획기적으로 촉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채 대표=차별화를 통한 성장을 위해선 고급 인력이 필수적인데, 중소기업은 청년들의 요구 사항을 맞추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중소기업 인건비 지원이나 고용에 따른 세제 혜택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김 대표=차세대 기술 개발에 도움이 되는 교육을 받은 인력이 공급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업계 수요가 높은 화학공학, 기계 관련 학과의 대학 입학 정원을 신축적으로 늘리는 등 유연한 정책을 펴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채 대표=세계 PC의 90%를 생산하는 대만이 그렇습니다. 대학의 구조가 전기·전자 등 반도체 관련 학과를 중심으로 집중 양성하는 시스템입니다. 화학공학 등 시장성이 큰 분야의 인력 양성에 힘쓸 필요가 있습니다.
▷정 부회장=단기적으로 이민청 신설 등을 통해 외국인 인력을 많이 들여오는 것이 우선일 듯합니다. 장기적 관점에선 출산율 상승을 위해 혼외 출산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 등을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채 대표=일이 몰리는 때 노동력 투입을 늘릴 수 있도록 주 52시간제의 유연한 적용을 허용해주는 것도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정리=장서우 기자/사진=이솔 한경디지털랩 기자 suw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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