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헹~잉~항~옹~헹~잉~허~/옹~가네 집에 일 났네 일이 났어~옹~가네 집에 일 났네 그려~/(중략) 고집불통 옹고집 둘이 됐네/옹헤야 마누라는 옹헤야 하나인데 옹헤야 지아비는 옹헤야 둘이 됐네~옹헤야/옹헤야~어절씨구 옹헤야 허허”
지난 1일 오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뜰아래 지하 연습장. 김미진(옹처)과 최호성(진옹), 최용석(허옹) 등 국립창극단의 베테랑 단원과 박성우(아들) 조유아(딸) 등 젊은 단원의 소리가 북과 거문고의 반주와 함께 어우러졌다. 오는 10~1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리는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 무대에 오를 ‘옹처‘의 첫 합창 ‘옹~가네 집에 일 났네’다. 감탄사처럼 내뱉는 ‘옹~헹~잉~항’ 후렴구로 시작해 단원들이 배역에 맞춰 각각 부르는 대목이 이어지다가 다 함께 노래하는 “옹~가네 집에 일 났네 그려~”로 흥겹고 신나게 마무리됐다. 이들의 노래에 고개를 끄덕이고 몸으로 장단을 맞추던 ‘작창가(作唱家)’ 장서윤(31)은 “사람의 성(姓)인 ‘옹’을 놀라는 감탄사로 사용해 흥을 살렸다”며 “관객이 여러 번 나올 때 반가울 만한 쉽고 재밌는 멜로디를 반복해 따라 부르고 싶도록 창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일곱 살에 판소리를 시작한 장서윤은 일찌감치 ‘꿈나무 명창’으로 이름을 알린 소리꾼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2002년 국립창극단의 어린이 창극 ‘효녀 심청’에 심청 역으로 무대에 섰고, 국악고와 서울대 음대와 동 대학원에서 판소리를 전공했다. '여우락 페스티벌'의 '아는 노래뎐‘(2016), 국립창극단의 창극 ‘미녀와 야수’(2017), 국립극장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2017) 등 다수의 작품에 주연으로 출연했고, 지난해 12월 서울 돈화문국악당에서 '김세종제 춘향가’로 판소리 완창 공연도 했다.
이번 공연은 소리꾼이 아니라 창극의 작창가로서 장서윤을 알리는 무대다. 그는 국립창극단이 지난해 말 처음 공모한 ‘작창가 프로젝트’의 신진 창작가로 선발돼 올 1월부터 작가 김민정과 함께 ‘옹처’ 프로젝트 작업을 해 왔다. “’옹처‘는 유실된 판소리 일곱 바탕 중 ‘옹고집 타령’을 현대적으로 비튼 작품입니다. 진짜 옹고집(진옹)과 가짜 옹고집(허옹)을 가리는 과정에서 마음고생이 많았을 옹고집의 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자신의 행복을 찾는 주체적인 여성을 그립니다. 작가 선생님께서 2막까지 대본을 써주셨는데 이번 시연회에선 30분 분량으로 1막만 보여드립니다.”
장서윤은 소리꾼으로서 공연 활동과 함께 20대 중반부터 전통음악에 기반을 둔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해 왔다. 특히 2017년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과 지난해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를 판소리로 창작해 1인극으로 공연하거나 영상으로 제작해 선보여 호평받았다. 판소리 창작과 창극의 작창 작업은 어떻게 다를까. “창작 판소리는 원본의 개작부터 구성, 작창, 공연까지 모두 혼자 하는 작업입니다. 반면 창극의 작창은 주어진 대본을 작가 선생님과 함께 판소리 어법에 맞게 수정하는 소리 대본을 만드는 작업부터 합창 도창 서사를 담당할 소리꾼과 맞추는 작업까지 긴밀히 협업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밀착형 멘토를 받으면서 협업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장서윤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관객에게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데 작창의 중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관객이 오페라나 서양 뮤지컬을 볼 때보다 우리네 이야기이자 우리말로 하는 음악극인 창극을 관람할 때 가사가 더 잘 들리기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 같습니다. 판소리의 주된 목적은 이야기 전달입니다. 조금 더 예쁜 멜로디를 만들기보다는 가사가 좀 더 잘 들리는 방향으로 장단과 음에 말을 붙이려고 했습니다.”
그는 “음악 자체도 실험적인 요소를 가미해 제 색깔을 드러내기보다는 전통적인 판소리 스타일에 충실하게 작창했다”고 했다. “이전 ’어린 왕자‘나 ‘동물 농장’을 작창할 때는 내용의 흐름에 따라 기존 판소리에 없는 장단이나 음계를 사용하는 등 자유롭게 작업했어요. 이번에는 프로젝트 목표가 유실된 판소리 일곱 바탕을 가지고 전통적인 창극을 만드는 것이고, 수십년 간 판소리를 체화한 소리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노래를 지어야 하는 만큼 기본에 집중했습니다. 각 배역에 맞는 맛깔난 소리로 아기자기하면서도 재밌게 구성했습니다.”
장서윤은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에 지난 9월 광주 동구 전통문화관 너덜마당 무대에 오른 광주시립창극단의 신작 ‘무등산 산군이’를 통해 창극 작창가로 데뷔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의뢰가 들어왔어요. 아이들 대상의 작은 창극인데 판소리를 바탕으로 민요나 가요 스타일의 노래도 가미했죠. 제가 창작한 작품을 무대 밖에서 관객의 표정을 보면서 관람한 건 처음이었는데 보람차고 행복했습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아 내년에 좀더 규모를 키워 재공연할 예정입니다.”
이번 시연회에서는 ‘옹처’를 시작으로 ‘강릉서캐타령’(김풍년 대본, 유태평양 작창), ‘게우사’(이철희 대본, 서의철 작창), ‘덴동어미 화전가’(김민정 대본, 박정수 작창) 등 네 편이 연이어 무대에 오른다. 국립창극단은 시연회 반응과 작품의 완성도 등을 평가해 이들 작품을 향후 정규 공연으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장서윤은 “‘옹처’도 시연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2막까지 완전한 작품으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며 “앞으로도 창극 작창을 비롯해 전통에 깊이 뿌리를 두고 현대적인 감각을 입히는 창작 작업을 부지런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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