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그룹에 부는 여풍(女風)이 거세다. LG·SK그룹에 이어 삼성그룹에서도 비(非) 오너가 출신의 첫 사장급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탄생했다. 성별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경영 철학이 뿌리를 내리면서 '유리 천장'이 견고했던 4대 그룹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5일 2023년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 이영희 부사장(DX부문 글로벌마케팅센터장)을 사장으로 발탁했다. 삼성전자 최초의 여성 사장이자 삼성그룹 내에서도 비(非) 오너가 출신의 최초의 여성 사장이다.
삼성그룹은 23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여성 CEO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유일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4대 그룹에서도 가장 많은 여성임원(65명)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동안 CEO는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었다.
이재용 회장의 첫 인사에서 여성 임원이 '유리 천장'을 뚫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성별과 국적에 관계없이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이 회장의 철학을 담아낸 인사로 풀이된다.
앞서 LG·SK그룹에서도 첫 여성 CEO가 차례로 배출되면서 삼성그룹에서도 여성 CEO가 탄생할 것이란 기대가 높았다.
지난달 LG그룹은 4대 그룹사 중 최초로 여성 임원을 계열사 CEO에 임명했다. 이정애 LG생활건강 음료사업부장(부사장)이 사장(CEO)으로 승진했고, 지투알은 박애리 부사장을 CEO로 선임했다. 모두 오너 가문 출신이 아닌 여성 임원들이다.
이달 2일 SK그룹 인사에서도 비(非) 오너 가문인 여성 임원이 CEO로 올랐다.
SK그룹 계열사 11번가는 운영총괄을 맡고 있는 안정은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신임 CEO에 내정했다. 11번가는 안 내정자를 첫번째 여성 CEO로 발탁해 안정은·하형일 각자 대표 체제로 전환한다고 알렸다.
CJ그룹에서도 첫 여성 CEO가 탄생했다. CJ그룹은 지난 10월 인사를 단행하면서 이선정 CJ올리브영 영업본부장을 CJ올리브영의 첫 여성 CEO로 등용했다. 이 대표는 1977년생으로 그룹 내 최연소 CEO이기도 하다.
국내 주요 기업에 부는 여풍이 거세지면서 여성 전문경영인 입지가 넓어질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특히 오너 일가 출신이 아닌 여성 임원들의 CEO 진출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오너 일가 중에서도 회장급은 지난달 인사를 단행한 신세계그룹의 이명희 회장이 유일하다. 부회장급으로는 임세령 대상그룹 부회장과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이 있고 사장급 경영인으로는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이 활약 중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유리 천장이 특히 두꺼웠던 4대 그룹에서 여성 CEO가 탄생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다른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기업 내·외부에서 '성과주의'를 우선하는 분위기가 주류가 됐다. 앞으로 여성 CEO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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