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이런 대법원장 있었나

입력 2022-12-06 17:31   수정 2022-12-07 01:18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1887~1964)는 일제강점기에 ‘유조리(有條理) 최열렬(最熱烈)’로 불렸다. 독립운동가들의 무료 변론을 맡아 조리가 있으면서도 열렬하게 변호해서였다. 그 덕분에 ‘조선 제일의 좌경 변호사’로 낙인이 찍혔지만 해방 후 민족의 분열보다는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청렴강직한 법관상도 세웠다. 10년 가까이 대법원장으로 일하며 손잡이가 부러진 도장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지극히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지공무사(至公無私), 늘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홀로 있을 때도 사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언동을 삼가는 계구신독(戒懼愼獨)이 그의 좌우명이었다.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은 국민적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막강한 권한과 위상만큼 법률 지식 외에도 정의감과 용기, 공평무사한 태도 등 여러 덕목을 갖춰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그런 점에서 참 예외적인 경우다. 문재인 정부 때 대법관 경력도 없이 춘천지방법원장에서 대법원장으로 바로 임명된 것은 진보성향 판사들의 연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맡았던 전력 때문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진보성향 판사를 주요 보직에 앉히는 ‘코드 인사’를 반복한다는 비판이 잇달았다.

대법원장 공관 리모델링을 위한 예산 무단 전용, 아들 부부의 공관 무상 거주 등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임성근 부장판사의 사직서 수리와 관련한 거짓말은 기소 내지 탄핵감이다. 임 판사의 사직서 수리를 거부하고도 이를 부인했다가 대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거짓말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번에는 ‘인사 포퓰리즘’ 논란을 빚고 있다. 김 대법원장이 내년 초 전국 지방법원장 인사를 앞두고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전면 실시하려는 데 대해 일선 판사들이 법관대표회의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의 권한 분산, 각급 법원 행정의 민주화를 명분으로 2019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자신이 임명한 수석부장판사가 후보로 추천되고 법원장에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년 9월 임기가 끝나는 김 대법원장의 ‘알박기 인사’에 이 제도가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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