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무역은 한국 섬유산업의 신화로 통한다. 1974년 서울 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시작해 매출 3조원대 기업으로 성장할 때까지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50년 가까이 이어온 기업에 시련이 없었을 리 없다. 방글라데시 생산 공장을 초토화한 1991년 사이클론 사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은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을 상대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사업을 펼치는 영원무역에 직격탄을 날렸다.
6일 서울 영원무역 명동사옥에서 만난 ‘제31회 다산경영상’(창업경영인 부문) 수상자 성기학 영원무역·영원아웃도어 회장은 담담하게 말했다. 영원무역이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 5개국에 생산공장을 분산하고, 6646억원(3분기 말 기준)에 달하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쌓아둔 건 성 회장의 이런 철학을 반영한 조치다. 성 회장은 “최악을 상정한 경영은 당장은 답답할지 모르지만, 위기가 현실화했을 때 기업이 패닉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그는 국내에 머물던 섬유산업의 지평을 세계로 넓혔다. 영원무역은 1980년 방글라데시 치타공 공장을 시작으로 1995년 중국 칭다오, 2001년 엘살바도르, 2003년 베트남 남딘에 생산 벨트를 구축했다. 지금은 노스페이스, 룰루레몬, 파타고니아 등 40여 곳의 세계 유명 아웃도어 및 스포츠 브랜드에 납품한다.
요즘엔 국내 섬유업체들이 저임금을 찾아 동남아시아 등지에 공장을 두는 것을 당연시한다. 하지만 1980년대만 하더라도 업계에서 해외 투자를 감행한 곳은 드물었다.
공장을 한 국가에 몰아두지 않고 여러 나라에 분산한 건 영원무역 글로벌 경영의 차별점이다. 그 덕에 영원무역은 다른 기업들이 중국의 ‘제로 코로나’로 타격을 볼 때 피해를 최소화했다.
“평소 극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경영하다가 실제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 방안을 찾는 걸 즐기는 편입니다. 내년 경영 여건은 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어려운 축에 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럴 때일수록 새 제품을 만들고 인재 양성에 투자해 다음 호황기를 대비해야 해요.”
실제로 성 회장은 회사를 경영할 때 인재 채용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업에 맞는 인재가 있어야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고, 좋은 회사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능력 있는 인재라면 출신을 따지지 않고 요직에 기용했다. 영원무역에는 12명(전체의 22.6%)의 고졸·전문대졸 임원이 있다. 그는 직원을 뽑을 때 세 가지를 본다. 첫째, 담배를 피우지 않아야 하고 둘째, 영어를 잘해야 하며 셋째, 정직해야 한다. 그는 “맡은 일을 성실하게 완수하고 책임지는 용기를 지닌 사람을 뽑는 게 인재 채용의 원칙”이라고 했다.
작년에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3.2%, 70.4% 증가한 2조7925억원, 4425억원에 달해 성장세를 이어갔다. 노스페이스를 운영하는 영원아웃도어의 실적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성 회장은 공정 자동화를 영원무역이 풀어야 할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코로나가 촉발한 단순노동 분야의 구인난 등으로 자동화는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될 것이란 게 그의 판단이다. 성 회장은 “자동화 설비를 도입해 구인난에 대응하는 쪽으로 투자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 성기학 회장 약력
△1947년 서울 출생
△1970년 서울대 상과대학 무역학과 졸업
△1972년 서울통상 입사
△1974년 영원무역 창업
△1984년 영원무역 대표이사 회장
△1992년 골드윈코리아(현 영원아웃도어) 설립
△2014~2020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13·14대 회장
△2018~2020년 국제섬유생산자연맹(ITMF) 회장
△2022년 서울대 이사
배정철 기자/사진=허문찬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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