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싸울 자신이 없으면 그냥 항복하라는 회유였다. 동래부사 송상현의 답은 여섯 자로 더 짧았다. “싸워서 죽는 것은 쉽지만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戰死易 假道難).”
‘기백(氣魄)’이란 이런 것이다.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강약을 뛰어넘는 게 정신이다. 동래성은 결국 함락됐지만, 끝내 조선이 무너지지 않은 것도 이런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태원 참사 애도 기간에도 미사일을 쏘는 것은 기백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대적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막가는 상대가 더 까다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너무 익숙해져서 별다른 감흥을 못 느끼지만, 북한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도 거리낌 없이 할 말을 쏟아낸다. 박정천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달 한·미 연합공중훈련과 관련해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미국을 위협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과연 중국에 이런 직설적인 발언을 할 수 있을까. 경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물론 이해하지만, 우리가 지나치게 중국에 끌려다닌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다.
다행히 이번 정부는 다른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에 북한이 무기 개발을 중단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능력과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북한 도발에 대한 중국의 책임론을 제기한 것이다. 민감한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직격탄을 날렸다. 윤 대통령은 “대만의 현 상황을 일방적으로 바꾸려는 어떤 시도에도 단호히 반대한다”고 했다. 이런 발언을 했지만 중국에서 어떤 공식적인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만만하게 보이면 만만한 대우를 받는다는 게 정글 같은 국제사회의 법칙이다. 북한이 핵과 중국 뒷배를 믿는다면 우리에게는 한·미 동맹이 있다. 지레 움츠러들지 말고 더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고립무원 남한산성에서 화친과 결사 항전을 고민해야 할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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