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포스코 SK이노베이션 같은 큰 기업들은 화물차를 직접 사지 않는다. 기사도 직고용하지 않는다. 물류사업이 제조업과는 완전히 다른 전문성을 요구하는 데다 경기가 나빠지거나 사업 실적이 떨어질 때 유연성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물회사들도 차량과 운전기사 보유 비중을 아주 낮게 유지한다. 경쟁입찰에서 운송권을 따낼 수 있을지, 일감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예측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지입(持入)계약이라는 특수한 거래 형태가 물류시장을 주름잡게 된 배경이다. 화물차 소유주가 물류회사로부터 영업번호판을 발부받아 화물을 운송하고 운임을 받는 방식이다. 이때 차량 소유주는 개인 사업자로 등록된다.
말 그대로 자영업자인 만큼 언제든지 운송 거래처를 바꿀 수 있다. 정유 4사의 기름을 실어나르는 탱크로리의 총 숫자는 1000대가 넘는 수준에서 매년 일정하게 유지된다. 특정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올라 운송차량 숫자가 늘어나면 점유율 하락 기업의 차량은 줄어드는 구조다. 화물연대는 노동조합이 아니라 이들 개인 사업자의 결사체다. 가입자들이 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원이어서 노조라는 착시를 일으키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진짜 세상을 둘러보면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화물연대의 전복적 구호가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알게 된다. 화물연대가 세상을 바꿀 일은 없다. 오히려 반대다. 미국에는 350만 명이 넘는 트럭 운전사가 있다. 이들이 요즘 가장 걱정하는 것이 자율주행 트럭의 등장이다. 무인 트럭 상용화 속도는 승용차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 대륙에는 운전기사 없이 장거리 구간을 완벽하게 주행하는 시범 트럭들이 있다. 사람의 역할은 출발지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는 것, 목적지 인근 인터체인지에 도착한 트럭을 도심으로 운행하는 것일 뿐이다.
테슬라나 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을 굳이 거명하지 않아도 수많은 국내외 자율주행 스타트업이 이미 이 정도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무인 트럭은 기업물류시장의 강력한 게임체인저다. 졸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정속주행을 한다. 사람이 운전하는 차량보다 훨씬 빠르고 안전하다. 한국은 국토 면적이 좁지만 거미줄 같은 도로망이 전국을 수놓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지난 수십년간 국회의원들의 선심성 사업으로 깔아놓은 지역 도로들이 자율주행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화물연대에 대한 또 다른 도전은 뜻밖에도 탄소중립 바람이다. 경유를 때는 대형 트럭은 도로 위의 탄소 덩어리다. 화물차 시장의 전기·수소차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특히 수소트럭의 연료 효율은 기업 물류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수소트럭에 자율주행 기능을 얹는다는 현대자동차의 구상은 전혀 엉뚱하지 않고 멀지도 않다. 이미 2018년에 수도권 40㎞ 구간에서 대형 트레일러 자율주행을 성공시킨 현대차는 미 자율주행 스타트업 오로라에도 지분을 확보하면서 조기 양산을 노리고 있다. 오로라는 내년에 자율주행 트럭을 처음 출시한다.
가뜩이나 화물 운전자 구하기 어려운 시대다. 젊은 세대는 화물연대 장년층 자리를 메울 생각이 별로 없다.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다가오는 수소경제는 노동 집약에 따른 만성적 고비용과 노조 저항에 시달리는 물류산업 판도를 완전히 갈아엎을 것이다. 철도에선 장대열차가 육상 운송의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몇 달 전 정부가 수도권에서 부산까지 시범운행을 성공시킨 장대열차는 총길이 777m로 객차와 화차를 무려 50개나 연결한 것이었다. 상용화하면 물류비용 절감액이 연간 8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우리 철도 기술력은 총길이 1㎞, 80량짜리 열차 운행도 가능하다.
기업과 국민들이 진절머리를 내지 않아도 화물연대의 존속 시한은 얼마 남지 않았다. 20년이나 골탕을 먹였으니 나중에 고객의 외면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바깥세상에는 민노총이나 화물연대 따위는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세찬 바람이 불고 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