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생산, 판매 분리로 무역장벽 넘어
1833년 미국의 오베드 핫세가 추수 기계로 특허를 받자 비슷한 시기 사이러스 맥코믹은 오베드가 자신의 현장 경험을 특허로 침해했다고 맞섰다. 그리고 맥코믹은 하베스팅 머신 컴퍼니를 세워 미국 농업에 기계를 도입했다. 1939년까지 10만대의 트랙터를 만들었고 1950년대는 미국 농기계 시장을 장악했다.
그런데 농기계도 근본은 자동차와 다르지 않다. 바퀴와 엔진이 동일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2차 대전 때는 트럭 및 밴을 만들어 방위사업에 진출하기도 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하베스팅의 자동차 유산이다. 하베스트는 1953년 트럭 기반의 여객운수용 자동차 '트래블올(travelall)'을 개발했다. 그리고 1950년대 후반에는 2도어 오프로더를 만들어 짚(Jeep)에 도전했고 이때 등장시킨 제품이 '스카우트 80'이다. 이후 80은 1965년 '800', 1968년 '800A', 1970년 '800B', 1971년 '스카우트2', 1977년 '슈퍼 스카우트'’ 등으로 짚과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물론 짚의 아성을 넘지 못했지만 미국 내에선 농기계 전문기업이 만든 정통 오프로더로 많은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1979년 스카우트3 개발을 앞두고 수익성을 이유로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사라진 '스카우트'가 재조명받는 배경은 폭스바겐의 미국 내 전기차 전략 때문이다. 1985년 하베스팅이 나비스타로 기업 이름을 바꾸면서 '스카우트' 브랜드는 사라졌지만 폭스바겐그룹 내 상용차기업 트라톤이 나비스타를 인수해 스카우트 브랜드 회생에 시동을 걸었다. 미국 내 디젤게이트로 막대한 벌금을 물었던 폭스바겐그룹이 미국에서 다시 신뢰를 얻기 위해 전기차를 선택했고, 여러 종류 가운데 인기가 높은 픽업 및 SUV를 지목한 셈이다. 미국인들에게 여전히 스카우트는 짚과 경쟁했던 향수가 남아 있는 점도 감안했다. 동시에 픽업을 미국 내에서 만들어 전기 물류 시장에 진출을 노리는 신생기업 리비안과 어깨를 견주고 쉐보레 전기 픽업과도 맞붙는다는 그림이다.
스카우트 부활이 결정되자 관심은 생산의 주체로 모아졌다. 당장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시행된 만큼 미국 생산이 필요했는데 이때 손을 내민 곳이 아이폰 위탁 생산기업인 폭스콘이다. 캐딜락이 폐쇄한 공장을 진작 인수해 놓은 데다 폭스콘 스스로 전기차까지 만들어 소비 시장에 진출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어서다. 누구든 요청만 하면 전기차를 위탁 생산하겠다는 폭스콘의 선견지명이 돋보인 셈이다.
폭스콘의 전기차 야심(?)은 명확하다. 전기차 생산 경험이 없는 스타트업도 배터리 스펙, 옵션 등을 고르면 폭스콘이 얼마든지 전기차를 만들어준다. 이를 위해 자체 플랫폼 개발도 끝냈고 자율주행 솔루션도 마련했다. 글로벌 어디서든, 그리고 누구든 전기차가 필요하면 요청만 하라는 의미다. 한 마디로 생산조차도 철저히 고객 맞춤형으로 가겠다는 의지다.
그 결과 폭스바겐 뿐 아니라 애플을 향한 구애도 엄청나다. 심지어 테슬라에게도 생산 시설을 늘리는데 돈 쓰지 말고 폭스콘에 맡기라고 얘기한다. 전기차와 관련된 사업은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를 가리지 않고 소재부터 완성차 제조 및 판매, 위탁 생산까지 마다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사실 폭스콘의 전기차 사업 의지는 IT 기기의 증가세 둔화가 원인이다. 휴대폰 등도 성장에서 벗어나 대체 시장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생각 만큼 이익도 높지 않아서다. 이런 상황에서 개방형 전기차 플랫폼 기반으로 생산까지 해주는 것은 제조업 측면에서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그들의 시각에서 전기차는 IT 제품의 연장선에 있는 만큼 새로운 시각으로 전기차에 다가가면 2,000조원에 달하는 자동차 시장 내 입지를 다질 수 있다고 봤으니 말이다.
권용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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