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08일 15:1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홍콩계 사모펀드 운용사 베어링PEA가 국내 1위 폴리이미드 필름 회사인 PI첨단소재 인수를 철회했다. 인수 발표 후 주가가 급락한데다 금리 인상으로 거래 비용이 커지자 계약을 파기한 것으로 보인다. 베어링PEA는 지난 10월 스웨덴 발렌베리가문 계열 사모펀드인 EQT파트너스에 합병됐다.
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베어링PEA는 이날 오전 PI첨단소재의 최대주주인 글랜우드PE에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지난 6월 PI첨단소재 지분 54.07%를 약 1조2750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한 지 6개월여 만이다.
양측은 오는 30일 거래 종결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당초 지난 9월말 종결할 계획이었지만 중국에서의 기업결합심사가 늦어지면서 한 차례 연기됐다. 베어링PEA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기업결합심사와 관련해 필요한 서류를 중국 당국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서류를 토대로 조만간 심사 결과가 나올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베어링PEA가 돌연 인수 의사를 철회한 건 PI첨단소재의 주가 하락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베어링PEA는 인수전 당시 경쟁 후보였던 롯데케미칼, 프랑스 소재 기업 알케마 등보다 높은 가격을 써낸데다 거래종결성 측면에서도 우위를 보여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문제는 인수 계약 체결 직후부터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베어링PEA가 인수하기로 한 주당 가격은 약 8만원이다. 최근 주가는 3만원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최근 시가총액은 9000억원 안팎을 오가며, 이날은 9338억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베어링이 지분 54.07%에 지불하기로 한 1조2750억원에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펀드 출자자들의 우려가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금리 인상 기조 속에 대규모 인수금융을 조달하는 것도 부담이 됐다. 베어링PEA는 인수금융 주선사로 우리은행과 미래에셋증권을 선정했다.
IB업계 관계자는 “베어링PEA가 국내의 인수 자문단 등과도 상의없이 갑자기 통보를 한 것으로 안다"며 "조만간 중국에서 기업결합심사 승인이 날 것으로 예상되고 거래를 이행해야되는 상황에 처하자 갑자기 거래를 파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베어링PEA는 계약 체결 직후만 해도 인수 의지가 상당했다. 그러나 주가 회복에 대한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재무적 투자자를 추가로 유치하거나, 인수 후 추가 장내 매수 등을 통해 주당 인수 단가를 낮추는 방안 등을 고심해왔다.
베어링PEA와 글랜우드PE간 거래는 이번이 두번째였다. 두 회사는 2016년 4월 한라시멘트 지분 99.7%를 6300억원에 공동인수 한 바 있다. 당시 글랜우드가 4000억원, 베어링PEA가 1800억원의 자금을 댔다. 베어링PEA는 이듬해인 2017년 글랜우드의 보유 지분을 전부 인수하면서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후 베어링은 회사의 기업가치를 키워 그해 말 아세아시멘트에 매각하면서 두 배 이상의 차익을 거뒀다.
앞으로 계약 파기의 책임을 놓고 베어링PEA와 글랜우드PE 간 상당한 갈등이 예상된다. 베어링PEA는 계약 당시 약 500억원의 계약금을 낸 것으로 파악된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글랜우드는 매각 계약 체결 이후 회사의 사업과 관련한 중요한 의사결정은 미뤄두고 있었던 만큼 회사가 입은 손실도 상당할 것"이라며 "최악의 경우 베어링PEA 측에 추가적인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PI첨단소재는 2016년 SKC와 코오롱인더스트리가 50대 50으로 합작 설립한 폴리이미드 필름 제조업체다. 연성회로기판(FPCB), 방열시트, 2차전지 등에 들어가는 폴리이미드 필름을 제조, 공급한다. 글랜우드PE가 이 회사 경영권 지분인 54.06%를 2019년말 6070억원에 사들였다.
지난해 매출 3019억원, 상가전영업이익(EBITDA) 996억원, 당기순이익 640억원의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2020년에 비해 매출은 15.3%, EBITDA는 22.1%, 순이익은 53.4% 증가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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