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 밖으로 넘쳐 흐르는 국물에 정신없는 분위기지만 진짜 맛집은 '아재(아저씨) 맛집'이죠."
지난 8일 오전 10시30분께 서울 여의도의 한 순대국집 앞에는 식당 문을 열기 전부터 이미 10명 넘게 줄을 섰다. 허름한 식당이지만 빨간색 대기 줄을 따라 늘어선 사람들 모습이 마치 백화점 명품 오픈런(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서 구매하는 현상)을 연상케 했다.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유재석이 이 식당을 다녀간 데 이어 가수 성시경의 유튜브 채널 '먹을텐데'에 소개된 후 손님이 더 늘었다는 얘기대로였다. 순대국은 중년 남성이 즐겨먹는다는 인식이 있지만 식당 안에 들어서니 젊은 20~30대 여성 손님이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식당 문이 열리자마자 입장한 조모 씨(26)는 "유튜브에서 보고 두 번째 방문"이라며 "아재 맛집 감성 찾아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섰다"고 했다. 유튜브 채널에 소개된 '성시경 맛집'을 종종 찾아간다는 그는 순댓국이 나오자마자 촬영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인증샷을 올렸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점심 시간 직전에는 대기 손님이 30명 넘어 가게 밖까지 긴 줄이 늘어섰다. 역시 절반 정도가 여성 손님이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기까지 대기만 40분씩 걸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곳은 '미식가의 성지'로 MZ(밀레니얼+Z)세대에게 화제가 되며 '핫플레이스(인기 많은 장소)'로 떠올랐다. 평일과 주말을 막론하고 '웨이팅(대기)'이 필수다. 식당 주인은 "유튜브 방영 이후 확실히 20~30대가 많이 찾아온다. 특히 여자 손님들이 늘었다"고 귀띔했다.
본업이 가수인 성시경은 구독자 100만명이 넘는 인기 유튜브 채널 '먹을텐데'를 운영하며 이른바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다)' 국밥 맛집들을 소개해 MZ세대 사이에서 '국밥부 장관'으로 불린다. 그중에서도 이곳 조회수는 300만회에 육박해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여의도 직장인 이 모씨(33)는 "성시경 맛집이면 맛은 보장됐을 것 같다. 한 번 와보고 싶었다"며 "허름하면서도 사람 냄새 나는 아재 감성이 좋다. 진짜 맛집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를 거치면서 느끼기 힘들었던 '사람 냄새'도 MZ세대의 발길을 이끄는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유명 연예인이 다녀갔다는 입소문까지 더해져 새로운 맛집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2030 여성이 많이 찾는 건 '뉴트로(신복고) 감성'에 눈 뜨기 시작했다는 것"이라면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맛집을 경험해보려는 '경험 소비' 행태라 할 수 있다. MZ세대에게 '아재 맛집'도 트렌디(유행)한 것으로 뜨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곳이 핫플로 뜨면서 오히려 볼멘소리를 하는 단골도 있었다. 한 30대 남성은 "줄이 너무 길어서 왜 그런가 했더니 성시경 유튜브에 나오면서 손님이 늘어난 것 같다. 원래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겨울철이기도 해 사람이 더 많아졌다"고 말했다.
단골들에겐 더 이상 편하게 갈 수 있는 '나만 아는 맛집'이 아니게 됐다는 것이다. 식당을 찾아왔다가 너무 긴 줄에 발걸음을 돌린 강모 씨(34)는 "요즘은 유튜브에 한 번 나오면 무조건 줄 서는 게 기본이 됐다. 사람이 너무 몰려 이제는 밥 먹으러 오기 힘들어졌다"고 덧붙였다.
이현주 한경닷컴 기자 wondering_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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