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나도, 실패해도 또 도전…창업 중독자들, 벤처 생태계 키웠다

입력 2022-12-08 17:27   수정 2022-12-09 00:43

국내 벤처업계에 노정석(비팩토리 대표)이란 이름은 꽤 많이 알려져 있다. 창업의 정석, 미다스의 손, 스타트업 마스터 등 화려한 수식어도 따라붙는다. 그럼에도 그와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은 ‘연쇄 창업가’다. 창업만 일곱 번 했고, 대부분 성공했다. 국내 스타트업 중 처음으로 구글이 사들인 태터앤컴퍼니(블로그 개발업체), 글로벌 모바일 광고회사 탭조이가 인수한 파이브락스(게임 이용자 분석 업체) 등을 그가 세웠다. 2020년 일곱 번째 창업 아이템으로 택한 건 의외로 화장품이었다. “뷰티업계의 테슬라가 되겠다”는 그는 인공지능(AI)으로 화장품도 혁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는 노 대표 같은 연쇄 창업가가 적지 않다. 손대는 사업마다 잭팟을 터뜨리는 인물도 있고, 수많은 실패를 겪은 뒤 마침내 성공 가도에 오르는 사람도 있다. 성공한 창업자가 투자자로 변신해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하기도 한다. 한경 긱스(Geeks)가 국내 스타트업 업계를 이끌어온 대표적 연쇄 창업가들을 살펴봤다.
○7전8기형 창업자들
동영상 앱 아자르로 대박을 터뜨린 안상일 하이퍼커넥트 대표는 이른바 ‘오뚝이형’ 연쇄 창업가다. 그는 7전8기가 아니라 무려 10전11기를 거쳤다. 김밥집, 옷가게, 검색엔진, 사진 스튜디오 등 업종도 가리지 않았다. 서울대 창업동아리 회장 출신인 그는 10번에 이르는 쓰라린 실패 뒤 2014년 하이퍼커넥트를 세웠다.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맞춤형 영상 채팅 앱 아자르는 글로벌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초 세계 최대 데이팅 앱 틴더를 운영하는 미국 매치그룹은 하이퍼커넥트를 2조원에 사들였다.

박현호 크몽 대표 역시 10전11기를 겪었다. 프리랜서 마켓 플랫폼 크몽으로 주목받고 있는 박 대표는 대학생 시절 온라인 쇼핑몰, PC방 관리 프로그램 등을 개발했다. 전자기기 쇼핑몰 라밤바도 세웠다. 성장하던 사업은 닷컴버블이 터지며 와르르 무너졌다. 2011년 크몽의 초기 모델을 선보인다. 5000원에 다른 사람의 재능을 사고파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하다가 캐리커처 그려주기, 연애 상담, 직장 상사 욕해주기 등 ‘말랑말랑’한 요소를 넣으며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대표는 8전9기로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 신화를 썼다. 이 대표는 간편 결제 서비스를 내놓기 전 2011년 소셜미디어 울라블라, 2013년에는 모바일 투표 앱 다보트 등을 출시했다. 이후 100개가 넘는 아이템 가운데 선택해 나온 서비스가 지금의 금융 앱 토스다.

침대 매트리스 시장을 혁신하고 있는 전주훈 삼분의일 대표 역시 여러 차례 사업에 실패했다. 전 대표는 2015년 가사도우미 플랫폼 홈클을 내놨으나 수익성 악화와 법률문제 등으로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가성비’ 좋은 매트리스업체 삼분의일로 재기에 성공한 그는 최근 글로벌 화학회사 다우와 제품 공동 개발 협약을 맺는 등 사업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연이어 성공 가도 달리기도
‘미다스의 손’을 가진 창업자도 적지 않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이 대표적이다. 1세대 벤처사업가인 장 의장은 1997년 네오위즈를 설립했다. 2005년에는 검색엔진 업체 첫눈을 공동 창업한 뒤 네이버에 매각했고, 2007년 크래프톤 전신인 블루홀스튜디오를 설립했다. 크래프톤은 대형 게임사로 성장해 지난해 상장에 성공했다.

클라우드 컨설팅 기업 베스핀글로벌의 이한주 대표 역시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했다. 이 대표는 1983년 아버지인 이해민 전 삼성전자 대표를 따라 미국으로 갔다. 이후 1998년 웹 호스팅 업체 호스트웨이를 창업해 인터넷 서비스 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 대표는 인터넷 성장 흐름을 타고 2014년 호스트웨이를 미국 사모펀드에 5억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국내로 돌아와 스타트업을 돕는 액셀러레이터(AC) 스파크랩을 공동 창업했고, 베스핀글로벌을 세워 클라우드 시장의 혁신을 꾀하고 있다.

데이터 농업 스타트업 그린랩스는 금융·정보기술(IT) 전문가들이 모여 2017년 설립한 회사다. 신상훈 대표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메릴린치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고, 데이팅 서비스 앱 아만다 운영사인 넥스트매치를 창업했다. 안동현·최성우 대표는 소셜커머스업체 쿠차도 설립했다. 안 대표는 피키캐스트 대표도 지냈다. 지난해 매출 약 1000억원을 기록한 그린랩스는 올해 다섯 배 늘어난 500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
○투자자로 변신해 후배 양성도
‘한국 스타트업의 대부’로 불리는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지금까지 5개 회사를 세웠다. 그는 1990년대 후반 결제업체 이니시스와 보안회사 이니텍을 설립해 모두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엑시트에 성공한 그는 후배 양성에 본격 나선다. 권 대표가 2010년 설립한 프라이머는 국내 최초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로 불린다. 스타일쉐어, 아이디어스, 번개장터, 라엘, 세탁특공대 등 200곳이 넘는 스타트업이 그의 손을 거쳐 빛을 봤다.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는 창업으로 수백억원의 대박을 터뜨리고 다시 창업 전도사로 벤처판에 복귀했다. 류 대표는 2006년 얼굴인식 기술 회사인 올라웍스를 세운 뒤 인텔에 3100만달러에 판 경험이 있다. 회사 매각 후 젊은 인재들의 기술 창업을 돕기 위해 2013년 퓨처플레이를 설립했다.
○연쇄 창업은 실리콘밸리 문화
연쇄 창업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키운 힘이기도 하다. 국내 벤처업계에서 활약하다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하는 사례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김동신 센드버드 대표는 기업용 채팅 플랫폼으로 유니콘기업을 키웠다. 그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엔씨소프트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게임업체 파프리카랩을 창업했다. 2012년 일본 게임사인 그리에 파프리카랩을 매각하고, 2013년 실리콘밸리에서 센드버드를 세웠다.

이창수 올거나이즈 대표는 노정석 대표와 함께 파이브락스를 공동 창업한 인물이다. 올거나이즈는 이 대표가 2017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자연어 이해 AI 솔루션 스타트업이다. AI봇 알리와 인지 검색 솔루션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인텔과 구글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한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는 한때 순두부집 사장이었다. 그는 식당 일이 너무 고되다는 것을 깨닫고, 서빙 같은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해주는 로봇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한다. 2017년 서빙 로봇 스타트업 베어로보틱스를 창업한 배경이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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