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의 공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법안이 야당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는 한전이 금융시장에서의 자금 조달까지 막힐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악의 경우 전력 대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은 찬성 89명, 반대 61명, 기권 53명으로 부결됐다. 개정안은 한전의 사채 발행 한도를 현행 자본금, 이익준비금, 임의적립금 등을 합한 금액의 2배에서 5배로 올리는 내용을 담았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사채 발행 한도 확대는 빚으로 한전 적자를 메우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대거 반대표를 던졌다.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된 것은 2021년 8월 법원조직법 개정안 부결 사태 후 처음이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사채 발행 한도를 증액하지 않으면 한전은 도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여야가 토론을 거쳐서 합의한 법안을 본회의에서 부결시킨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발행 못하면 전력구매 자금 없어…최악 땐 전력대란 부를 수도
한전은 액화천연가스(LNG) 등 글로벌 에너지값 상승으로 올해 3분기까지 21조8000억원에 달하는 누적적자를 기록하는 등 경영난에 빠졌다. 전기료 인상이 억제되면서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 이어지면서다. 이 탓에 한전은 올해 27조9000억원의 한전채를 발행해 전력구매비를 충당해왔다. 누적 사채발행액이 66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올해 한전의 사채발행한도는 91조8000억원이다. 한전의 자체 분석 결과 내년도 한전의 사채발행한도는 30조원 아래로 줄어들어 사채 발행 자체를 할 수 없을 전망이다.
정부와 여당은 내년에도 한전 적자 문제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발행한도를 늘리려고 했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증권가에서는 내년도 한전 적자액이 13조~17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대로 사채발행한도 증액이 막히면 한전은 한도 초과로 한전채를 찍을 수 없어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게 된다. 적자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전력구매비를 조달하지 못할 경우 전력시장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전이 당장 내년 1월부터 채권 발행 계획을 내지 못하면 자금시장의 불안이 증폭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은행 대출을 활용해 당장 급한 불을 끌 수 있지만, 한전 적자를 계속 대출에 의존할 수도 없다는 점이 부담이다.
야당의 한전채 발행한도 부결 투표는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끌었다. 국회 본회의에서 양 의원은 “이 같은 회사채 돌려막기로는 적자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전 적자에 대한 해결책은 명료하다”며 “전기 요금에 연료비 등 발전원가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당은 탈원전 정책으로 전력시장 혼란을 초래한 야당이 한전의 사채발행한도 증액까지 막아섰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성명을 내고 “한전법 개정 지연으로 한전이 전력구입비를 결제하지 못해 전력시장 전체가 마비될 위험에 처했다”고 말했다.
이지훈/고재연/장현주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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