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벤투 감독과 사도 바울에겐 공통점이 있다

입력 2022-12-12 10:01   수정 2022-12-13 10:54


“포르투갈 출신인 한국 벤토 감독은 (자신의) 모국을 쓰러뜨리고 다시 월드컵 무대로 돌아갈 권리를 얻었다.”(일본 마이니치신문) “한국을 이끄는 포르투갈인 파우로 벤토 감독은 (외국인 감독으로서) 월드컵 사상 모국과의 대전에서 승리한 두 번째 감독이 됐다.”(일본 일간스포츠)

한국이 포르투갈을 극적으로 꺾고 월드컵 16강에 오른 3일 새벽. 일본 신문들은 한국의 승전보와 함께 ‘파울루 벤투’ 한국 대표팀 감독 소식을 함께 전했다. 그는 직전 가나와의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해 포르투갈전을 관중석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파울루·바울·바오로·폴은 같은 이름
그런데 그의 성(姓) ‘벤투(Bento)’를 일본에선 [벤토](ベント)라고 부른다. 실은 발음상으론 [벤또]가 좀 더 가깝다. 우리 외래어 표기에서 특별한 경우를 빼곤 된소리를 적지 않는 규범에 따라 ‘-토’가 된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예전에 도시락 의미로 쓰던 일본말 ‘벤또’(べんとう)와 발음이 같아 그를 장난삼아 ‘벤또 감독’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름 역시 한글로는 ‘파울루’로 적으면 그만인 것을 일본에서는 ‘파우로(パウロ)’ 정도로밖에 옮길 수 없다. 일본어 자모 체계는 단순해 받침 표기가 안 되는 등 실제 발음을 온전히 옮기는 게 불가능하다. 가령 ‘맥도날드 햄버거’는 [마쿠도나루도 한바가](マクドナルド ハンバガ) 정도로만 적을 수 있다. 중국의 한자나 일본 가나에 비해 우리 한글은 웬만한 로마자는 실제 발음과 비슷하게 얼마든지 옮길 수 있다. 한글의 우수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외래말을 현지 발음에 가깝게 적는 것은 우리 외래어 표기의 기본 정신이다. 이는 조선어학회(한글학회의 전신)에서 1933년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제정 공표한 이래 줄곧 적용해온 규범이다. 당시 통일안에서는 제6장 ‘외래어 표기’에서 외래어를 적을 때 표음주의를 취한다고 명시했다. 표음주의란 단어를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는 뜻이니, 결국 현지 발음을 그대로 옮겨 적는 방식이다. 이는 한글의 탁월한 표기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소리대로 적는 한글, 표기 능력 탁월해
우리도 예전에 한자음을 빌려 외래어를 적던 시절이 있었다. ‘피택고(皮宅高), 색사비아(索士比亞), 야소(耶蘇)….’ 알 듯 말 듯한 이들은 각각 피타고라스, 셰익스피어, 예수를 옮긴 말이다. 이른바 음역어다. 개화기를 거쳐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외국의 인명이나 지명, 국명 따위를 한자음을 빌려 적었다. 외래어 표기법이 따로 없던 시절 얘기다.

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파울루 벤투 감독의 이름 ‘파울루(Paulo)’는 ‘바울’이다. 개화기 때 신약성서를 번역하면서 ‘바울’로 음역했다. ‘기독교 최초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전도자.’ 이 말이 지금껏 이어져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올라 있다.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모두에게 낯익다. ‘사도(使徒) 바울’이라고 하는 이가 지금의 포르투갈어로는 ‘파울루’다. 가톨릭에서는 ‘바울로’, 좀 더 대중적으로는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바울, 바울로, 바오로, 파울로는 모두 같은 이름으로, 영어권에서 남자 인명 ‘폴(Paul)’의 어원이기도 하다.

이제 ‘성(聖)바오로’ ‘세인트폴’ ‘상파울루’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성바오로 성당’은 영미권으로 가면 ‘세인트폴 성당’이다. 브라질의 최대 도시 ‘상파울루’는 ‘성바오로의 도시’라는 의미다. 우리말 접두어 ‘성인 성(聖)’ 자는 영미권에서 ‘세인트(Saint)-’가 되고, 포루투갈/에스파냐어권으로 가면 ‘상(San)-’이다. 북구어권에서는 ‘상트(Sant)-’가 붙는다.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과거 소련 시절의 레닌그라드)는 곧 ‘성(聖)피터의 도시(부르크)’란 뜻이다. ‘성피터’가 낯설다면 ‘성베드로’를 생각하면 알기 쉽다. 성바오로처럼 개화기 때 성서를 번역하면서 피터(Peter)를 ‘베드로’로 음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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