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행태의 뿌리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에 앞장섰던 비극에 있다. 당시 여당의 일부가 야당과 야합해서, 별다른 잘못이 없는 대통령을 소추해서 자기 정권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 일이 원죄가 돼 지금의 모습이 나온다.
이 원죄는 벗어나기 힘들다. 무엇보다도 탄핵파가 당을 장악해서 원죄에 관한 논의가 나올 수 없다. 게다가 소추의 직접적 원인이 박 대통령의 지도력 부족이었다는 점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탄핵파는 벼랑으로 몰려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이런 사정은 현 정권을 근본적 수준에서 불안하게 만든다. 정권은 지지층, 정당, 대통령의 세 지층으로 이뤄진다. 현 정권의 지지층과 윤석열 대통령은 견해와 이해에서 대체로 합치한다. 그러나 탄핵파가 주류인 여당은 아래위의 지층과 크게 어긋난다. 이런 부정합(不整合)이 윤 대통령의 지지도를 낮추고 정권을 불안하게 만드는 데 한몫 단단히 해왔다.
따라서 여당은 이 원죄를 우회해야 한다. 원죄에서 자유롭고 지지층에 희망을 주는 지도자들을 뽑아서 아래위 지층과의 부정합을 줄여야 한다. 그런 지도자들을 찾기는 물론 어렵다. 다행히 근자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자유주의 시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리고 이들은 원죄에서 자유롭다.
정권 초기에 대통령이 아닌 여권 인사가 한 장관처럼 ‘별’이 된 일은 지금까지 없었다. 박정희 정권 초기에 JP라는 애칭으로 불린 김종필의 경우가 비슷하다. 하긴 풍모도 비슷하니, 젊고 패기 있고 정치적 감각을 갖춰 열광적 지지자들을 지녔다. 보다 적절한 비교 대상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나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다. 풋풋한 매력을 지닌 한 장관이 의혹의 그늘이 어린 이재명 대표와 맞선 모습을 그려보면, 그가 지금 현 정권 지지자들을 매료시킨 것이 우연이거나 일시적 현상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김 위원장은 진 줄 알았던 ‘별’이 문득 중천으로 다시 솟구친 경우다. 그는 인품과 행적과 업적에서 두루 높은 평가를 받는다. 특히 지금 같은 난세에서 지도자가 꼭 지녀야 할 강인함을 갖췄다.
“아직도 생각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하고 국회에서 그를 윽박지른 의원은 그의 전설적 강인함을 몰랐던 모양이다. 그는 차분히 설명했다. (1)문재인 대통령은 신영복 교수를 사상가로 존경한다고 공언했다. (2)신 교수는 확인된 김일성주의자다. (3)고로 문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다. 이 담백한 삼단 논법 덕분에 많은 시민이 걱정하면서도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문 대통령의 사상 문제가 공론의 마당으로 나왔다.
‘노란봉투법’은 그의 용기를 다시 보여줬다. 그 법안은 특정 이익집단에 남의 재산권을 침해할 권한을 부여한다. 그것은 모든 사회를-인류 사회만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사회를-구성하는 원리를 허문다. 그 법안은 우리 사회 전체주의 세력의 도덕적 타락과 이념적 파산을 상징한다.
김 위원장은 그 법안에 단호히 반대했다. 통속적 문법에 따르면,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우리 위원회는 모든 일을 다룰 수 있다”고 얘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념을 밝혔고, 이 덕분에 그 법안의 위험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높아졌다. 지금 여당은 그처럼 강인한 소신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두 사람이 여러모로 보완적이라는 사정이다. 자연히 두 사람은 멋진 파트너십을 이룰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 장관이 정치 경력을 쌓아 지도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정치 경험이 다양하고 좌파 운동권의 속성에 대해 잘 아는 김 위원장이 그를 풍파로부터 지켜줄 수 있다.
탄핵의 원죄에서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지지를 받는 지도자들을 뽑는 것은 여당이 활력을 갖추도록 할 것이다. 그런 활력은 여당이 아래쪽 지지층과 위쪽 대통령과 이룬 부정합을 줄여서 정권을 튼튼히 할 것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