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가진 못했다. 지난달 유동성 사태가 불거지자 부(富)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는 “뱅크먼프리드 몫으로 추정할 만한 자산이 사실상 없다”고 공개했다. 뱅크먼프리드 자신도 “수중에 남은 돈은 10만달러가 전부”라고 했다.
정작 시장을 놀라게 한 건 억만장자 청년 자산의 공중분해 속도가 아니다. 어이없을 만큼 부정직했던 회계 처리 관행이었다. 고객 돈을 받으면 자체 발행한 토큰, FTT를 매입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것도 FTX가 아니라 자회사인 알라메다 송금을 통해서다.
담보 채권자 상위 50명에게 갚아야 할 부채는 31억달러다. 더 큰 문제는 개인투자자다. 줄잡아 100만 명이 직접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뱅크먼프리드는 잘못을 크게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수차례 화상 인터뷰를 통해 “회계 조작에 관여한 적이 없다”며 “자금 유용은 실수였다”고 항변했다. FTX 본사가 있는 케이맨제도 바하마에 머물 뿐 체포될 가능성이 있는 미국 땅은 밟지 않고 있다.
미 금융당국에도 비상이 걸렸다. 피해자가 워낙 광범위해서다. 하지만 깊게 개입하긴 어려운 처지다. 암호화폐가 금융 규제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서둘러 내놓은 지침 역시 상장 기업에 국한됐다. 기업들이 암호화폐 보유 현황 및 FTX 파산에 따른 노출 위험을 공시하도록 했을 뿐이다.
암호화폐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지만 투자자들을 보호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정통 금융 시장의 틀에 들어올 수 있을지, 편입하더라도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불투명하다. 테라·루나, 또 FTX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암호화폐 시장이 완벽한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비판을 받는 배경이다. 이젠 본격적인 투자자 보호 장치를 고민해볼 때가 된 것 같다. 국가를 넘나드는 시장 특성을 감안해 국가마다 머리를 맞대는 노력도 필요하다. 투자자 책임도 없지 않다. 맹목적인 믿음에 기초한 투자는 도박과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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