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움직이는 미술 작품’이 탄생한 건 1932년이다. 현대미술 거장 알렉산더 칼더(1898~1976)가 바람이 불면 흔들리도록 만든 조각 ‘모빌’을 만든 게 이때다. 지금이야 모빌이 아기 장난감 등으로 친숙하지만 당시만 해도 미술품이 움직인다는 건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움직이는 미술작품을 뜻하는 ‘키네틱 아트’ 장르도 이때 처음 시작됐다.
네덜란드 출신 작가 랄프 나우타(44)와 로네케 홀다인(42)이 만든 예술가 팀 ‘드리프트’는 ‘칼더의 정신적 후예’로 불린다. 움직이는 작품으로 미술계를 놀라게 한다는 점에서다. 지난주 만난 나우타는 “2003년부터 3차원(3D) 프린터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 정도로 예술에 신기술을 가장 빨리, 효과적으로 접목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이들이 2018년 암스테르담에서 선보인 세계 최초의 드론 예술 ‘프랜차이즈 프리덤’이 단적인 예다. 드론 300대가 철새 떼처럼 이합집산하며 비행하는 광경을 연출한 일종의 공연이다.
서울 이태원동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리고 있는 ‘자연과의 접속’은 드리프트의 작품 10여점을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전시다. 이들이 아시아 지역에서 전시를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천장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올라오기를 반복하는 꽃봉오리 모양의 조명이 눈길을 끈다. 식물이 빛과 온도에 반응해 꽃잎을 폈다 오므리는 모습을 구현한 작품 ‘샤이라이트’로, 해파리가 바다를 헤엄치는 모습도 함께 연상된다. 작품을 처음 구상한 건 2006년이지만 완성하는 데 8년이나 걸렸다. 자연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부품과 천조각 등을 수없이 조정하고 다시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진폭’(2015) 역시 자연의 모습을 모티브로 만든 움직이는 기계 작품이다. 201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도 출품됐던 작품으로, 20여 쌍의 유리관들이 새가 날갯짓하듯 부드럽게 움직이는 장면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깨지기 쉬운 미래’(2019)는 봄철 암스테르담 들판에서 채취한 민들레 1만5000송이를 말린 뒤 씨앗 하나하나를 핀셋으로 집어 LED 전구에 붙여 만든 대규모 조명 작품이다. 홀다인은 “인간과 자연, 기술은 모두 연결돼 있다는 주제의식을 각 작품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초입에 있는 설치미술 ‘물질’ 연작은 움직이진 않지만 소소한 재미를 준다. 햄버거와 아이폰, 바비인형 등 일상의 사물을 해체해 직육면체 덩어리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한국 전시를 기념해 신라면을 주제로 만든 작품도 있다. 전시는 내년 4월 16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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