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5년간 민간 주도로 주택 27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국민주거 안정 실현방안'을 발표한 지 약 4개월이 지났습니다. 정부 주도 공급은 최소화하고 규제 완화를 통해 민간 주도로 공급을 활성화한다는 정책이었지만, 올해가 끝나가는 지금 시점에서 민간 분양시장은 한껏 움츠러들고 있습니다. 정책 이행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습니다.
최근 건설회사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금리가 치솟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중견 건설사도 이율이 30%대를 웃돌고, 그나마도 대출이 되는 사업이 거의 없어 자금이 돌지 않는다고 합니다. 공사비도 급증하고 있는데, 특히 재개발·재건축은 각종 비용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주비 등을 지원해야 시공사로 선정이 되니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조합 사업비까지 지원하거나 보증해야 하는 탓입니다.
건설에 나선 현장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최근까지 지속됐던 민주노총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로 공사가 지연돼 지체상금을 물어야 할 판입니다. 이런 비용을 분양가에 반영할 수도 없습니다. 주변 시세보다 비싸다고 분양받지 않거나 청약에 당첨된 분들이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취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미분양이 너무 많아 위약금을 물고 분양 자체를 철회하는 경우도 늘어났다고 합니다.
내년 초에 건설사 부도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실제로 금융위기 당시 도급순위 100위에 드는 건설사 가운데 30여곳이 워크아웃이나 부도를 맞은 바 있습니다. 지금은 당시와 같이 고금리 상황인데, 부동산 거래마저 끊겨 주택가격 하락 폭이 가팔라진 탓에 당시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건설사들의 상황이 어려워지다 보니 내년 민간 아파트 분양시장이 30%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됩니다. 미국발 고금리가 지속된다면 그 이상 줄어들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도심 내 공급을 좌우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도 빨간 불이 들어왔습니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에서 공사비부터 이주비 등 사업비 지원, 설계변경에 의한 공사비 증액 등 각종 문제가 빚어진 것이 알려지면서 재건축·재개발에 대한 주민들과 건설사의 관심이 다소 수그러든 것입니다.
건설사는 이윤이 확보되는 적정 공사비가 아니면 수주 자체를 하지 않고 있고, 가장 많은 재건축 물량을 공급하게 될 1기 신도시 주민들도 고금리 시대가 지난 뒤 천천히 재건축하는 편이 좋다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결국 민간에 의한 공급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정부가 각종 규제를 풀어 민간 위주로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민간 공급이 대폭 위축되는 모양새입니다. 이에 반해 정부가 내놓은 공공분양 정책은 금리 영향을 덜 받기에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달 서울 내 공공분양 50만 가구 공급안을 발표했습니다. 공공주택 분양 유형은 나눔형·선택형·일반형으로 구분되는데, 시세의 70% 가격에 초기 비용도 거의 없고 금리마저 1.9~3%대여서 원리금 부담이 적습니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도 70~80%를 적용받고 4억원에서 5억원까지 대출도 해주는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마저 적용하지 않다 보니 국내에서 진행되는 어떤 아파트 분양보다도 좋은 조건을 갖췄습니다.
결국 2030 실수요자들은 민간분양보다 이 공공분양에 더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공공분양에만 거듭 도전하고, 도저히 당첨이 안 되면 그때 가서 민간분양 조건을 비교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민간분양은 점차 외면받고, 조건이 좋은 공공분양은 실수요자에게 또 다른 로또가 되는 셈입니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주택공급 조건에는 큰 차이가 없어야 합니다. 또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층 위주로만 공공주택을 공급해야 민간주택 공급이 늘어나게 됩니다. 내년은 건설업계 전반에 먹구름이 낀다고 합니다. 단순히 주택 규제만 조금 완화한다고 시장이 살아나진 못 할 것입니다. 정부가 민간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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