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시장 주도의 기업 구조조정을 정착시키기 위해 만든 ‘기업구조혁신펀드’의 운용 업무가 한국성장금융에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로 넘어간다. 내년도 경기침체가 본격화하면 구조조정 매물이 쏟아질 것에 대비해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를 캠코로 일원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민간이 주도하는 선제적 구조조정’이라는 당초의 도입 취지가 퇴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한국성장금융이 맡고 있던 기업구조혁신펀드 신규 조성 및 운용업무를 캠코로 이관하기로 했다. 성장금융은 2018년부터 세차례에 걸쳐 약 5000억원씩, 총 1조4900억원 규모의 기업구조혁신펀드를 조성해 운용해왔다. 하지만 4차 펀드부터는 캠코가 관련 업무를 주도하게 됐다. 캠코 관계자는 “4차 펀드 운용 준비에 돌입한 건 맞지만 규모와 일정 등 구체적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업구조혁신펀드는 기업 구조조정의 주도권을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서 자본시장으로 옮긴다는 취지로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인 2017년말 신설됐다. 성장금융이 국책 및 민간은행, 기업 등으로부터 출자받아 모(母)펀드를 조성한 후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선정해 해당 운용사가 조성하는 자펀드에 출자하는 방식이다. 모펀드는 자펀드에 40%를 출자하고, 운용사가 연기금, 공제회 등 민간으로부터 나머지 60%를 모아오는 매칭 형식이다.
그동안 동부제철, 성동조선해양, 명신산업 등이 기업구조혁신펀드로부터 수혈받아 위기를 넘기고 정상화됐다. 자산운용 업계는 성장금융이 성공적으로 운용해온 기업구조혁신펀드 업무가 갑작스럽게 캠코로 이관된 배경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민간으로 넘어갔던 구조조정의 주도권을 다시 관 중심으로 되돌려는 행보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 PEF 관계자는 “금리인상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발(發) 자금시장 경색 등으로 내년초부터 구조조정 매물이 급증할 가능성이 커 정부에서 캠코가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게 효율적이라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캠코는 그동안 기업구조혁신펀드 업무를 가져오기 위해 금융위 등 당국을 지속적으로 설득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7월에는 법률(한국자산관리공사 설립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부실징후 기업으로 한정됐던 지원 대상을 구조개선 기업까지 넓히고 자본금을 1조원에서 3조원으로 확충하는 등 사전 정지 작업도 했다.
자본시장에선 “어려워진 기업에 자금을 투입하는 사후 구조조정이 아니라 성장에서 재기, 회수까지 지원하는 사전 구조조정의 중요성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생겼는데 구조조정만 다시 분리해 캠코로 이관하는 건 시장 흐름에 역행하는 것 같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차준호/서형교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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