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친구들을 초대해 홈파티를 준비하던 임모씨(35)는 최근 난처한 일을 겪었다. 배달앱을 통해 피자, 파스타에 더해 와인까지 주문하려 했지만 “와인 가격이 음식값을 넘어 배달이 안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미리 와인을 준비하지 않았던 임씨는 부랴부랴 메뉴를 바꿔 가까스로 파티를 마쳤다. 하지만 지금도 왜 배달이 안 된 건지 의아해하고 있다.
이렇게 된 건 국세청이 ‘주류의 통신판매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를 2020년 수정하면서부터다. 종전에는 ‘음식과 함께 배달되는 주류는 통신판매가 가능하다’는 내용만 고시에 담았다. 그랬다가 “배달이 가능한 술의 범위를 명확히 해달라”는 의견이 관련 업계에서 나오자 ‘1회 총 주문 금액 중 주류 판매 금액이 50% 이하인 주류만 통신판매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더했다.
이에 대해 주류업계에선 “주류 문화의 다양화와 개선이 가로막히고, 소비자의 선택권이 침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치킨, 피자, 중국 음식 등 배달로 주로 시키는 음식들의 단가가 2만~3만원대인 점을 고려하면 음식점에서 4000~5000원에 판매하는 맥주, 소주 등을 주문할 때는 큰 불편이 없다.
하지만 최근 ‘홈술’ 열풍이 불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와인, 위스키, 수제 맥주 등을 주문할 때는 이 규제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7만~8만원짜리 와인을 한 병 시키려면 1만5000원짜리 파스타를 5인분 이상 주문해야 한다”며 “배달로는 와인을 주문하기 쉽지 않다”고 항변했다.
현행 규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한국외식업중앙회와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는 “50% 상한선을 폐지하면 음식점을 방문하지 않고 집에서 주류와 음식을 즐기는 경우가 많아져 외식업계에 타격이 될 것”이라고 했다. 청소년 주류 구매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과 국민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도 규제 유지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주류업계에선 그럼에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한국도 주류의 통신판매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면서 비대면 소비가 일상화하고, 홈술을 즐기는 소비자가 늘어난 실상을 반영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은 주류의 통신판매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전통주만 예외적으로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 유통·외식사들의 ‘스마트오더’를 통해 주류를 앱으로 구매할 수 있지만, 매장을 직접 방문해 수령해야 한다.
반면 해외에선 메이저 주종의 통신판매를 대부분 허용하고 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미국에선 유타, 미시시피 등 3개 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와인의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 20개 주에선 와인 외 기타 주류에 대해서도 통신판매를 허용한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 10개국도 온라인 주류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수입 주류와 소규모 업체에서 생산한 자국 주류를 비대면으로 판매할 수 있다. 주류수입협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주류 온라인 판매를 무차별적으로 제한하는 국가는 한국과 폴란드뿐이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