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극사실주의에 경찰도 속았다

입력 2022-12-13 18:09   수정 2022-12-21 19:32


“여기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한참 봤는데 미동도 없어요.”

지난달 25일 이런 신고를 받은 영국 경찰은 런던의 라즈 엠포리움 갤러리로 출동했다. 문은 잠겨 있었고, 창문 너머로는 수프 접시에 얼굴을 박고 기절한 젊은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긴급 상황이라고 판단한 경찰은 문을 부수고 갤러리 내부로 들이닥쳤다.

그리고 황당하다는 표정의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이거 미술 작품인데요.” 미국의 설치 조각가 마크 젠킨스의 극사실주의 조각 작품 ‘크리스티나’(사진)를 실제 사람으로 착각해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누구나 휴대폰 카메라로 선명하고 정확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지만, 극사실주의 예술은 미술시장에서 여전히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보는 즐거움이 있고 작가의 노력과 실력이 한눈에 드러난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관객이 작품을 실물과 착각하는 등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종종 생겨나는 덕분에 대중의 시선을 끌기 쉽다는 것도 장점이다.

극사실주의 작가 강강훈이 부산 조현화랑에서 열고 있는 개인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작가가 자신의 딸을 그린 ‘해는 진다’는 유화인데도 “사진 아니냐”는 관람객들의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만큼 그림이 생생하다는 얘기다.

얼굴의 솜털과 피부 아래로 비치는 푸른 동맥까지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강 작가는 “딸의 가장 예쁜 시기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그림을 그린다”며 “목화는 최근 돌아가신 어머니를 상징하는 소재로, 작가인 나를 포함해 그림 속에 3대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다음달 29일까지.

다음달 1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나우에서 개막하는 ‘올 댓 리얼리즘’은 사실주의 작가들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다. 고영훈, 김강용, 이석주, 지석철 등 작가 13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김종근 미술평론가는 “한국 현대미술의 한 갈래인 사실주의 계열을 가장 잘 대표하는 작가들을 골랐다”고 했다. 전시는 2부로 나뉘는데, 1부 전시는 다음달 31일까지 열린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전시 중인 이만나 작가의 극사실주의 풍경화, 춘천 이상원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상원 화백의 개인전 ‘표면에서 내면으로’도 가볼 만한 전시다. 각각 오는 25일과 내년 4월 30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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