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3D(3차원) 영화와 상극이란 건, 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상식이다. 미세한 물방울의 움직임과 물결의 흐름을 눈앞에 만질 수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다. 3D 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아바타1’(2009년)에 푸른 하늘을 나는 장면은 있어도 물속을 누비는 신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게 13년이 흘렀다. 그사이 엄청나게 발전한 영상 기술은 “물을 3D로 실감 나게 표현해 보겠다”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줬다. 14일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하는 ‘아바타: 물의 길’(아바타2)의 키워드는 물이다. 3D 안경을 끼는 순간 ‘첨벙’하고 바닷속에 빠져든다. 눈앞에 열대어들이 지나가고, 귓가엔 파도 소리가 가득 찬다. 이런 점에서 아바타2는 모든 영화인의 궁극의 목표인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에 매우 근접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전편의 ‘후광 효과’에 이 시대 최고의 거장이 13년이나 공을 들였다는 설명이 곁들여지니, 영화팬들의 관심이 안 쏠릴 리 없다. 13일 기준 국내 예매율(국내 전체 상영작 중 예매 비중)이 87%를 넘어섰다. 영화관에 가는 사람 열 명 중 아홉 명이 아바타2를 ‘찜’했다는 얘기다. 한국보다 이틀 뒤인 16일에 개봉하는 북미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일도 생겼다. 개봉도 하지 않았는데, 아바타2가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작품상과 감독상 부문 후보에 오른 것.
그럴 만했다. 20억달러(약 2조6090억원)를 투입한 효과는 확실했다. 아바타1이 선사했던 ‘놀라움’은 아바타2에선 ‘경이로움’으로 커졌다. 눈앞에 펼쳐지는 진풍경에 입을 다물기 힘들 정도였다.
1편은 지구 에너지 고갈을 해결하기 위해 판도라 행성으로 향한 인간과 원주민 나비족의 대립을 그렸다. 2편은 1편으로부터 10년 뒤 얘기다. 나비족이 된 인간 제이크 설리(샘 워딩턴 분)가 네이리티(조이 살다나 분)와 가족을 이루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바타2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단연 물이다. 3D로 구현하기 힘든 탓에 영화감독이라면 다들 피하는데, 캐머런 감독은 오히려 바다를 영화의 무대로 삼았다. 설리 가족이 인간들의 위협을 피해 바다로 터를 옮기는 스토리 라인을 짰다. 이들은 해양 민족 멧케이나족의 도움을 받아 바다에 정착한다. 캐머런은 90만 갤런(약 340만6870L) 규모의 초대형 물탱크를 설치했다. 배우들은 잠수 훈련을 받은 뒤 물속에서 촬영했다.
덕분에 바닷속에서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거대 해양생물 ‘툴쿤’을 친구 삼아 바다 한가운데를 유영하는 장면에선 관람객도 나비족이 된다. 영화 후반 바다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전투 장면에선 부서지는 파도가 팔에 닿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바다가 인간의 공격을 받는 장면에선 “영화를 통해 바다의 소중함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는 캐머런 감독의 의도가 읽혔다.
캐머런 감독은 이들 가족의 특징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그렸다. 영화가 1편보다 30분 늘어난 192분에 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항아처럼 보이는 로아크,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키리의 모습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이를 통해 아이들의 성장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긴다.
압권은 나비족과 비슷한 모습의 아바타로 변신한 인간들과 설리 가족의 혈투 장면이다. 바다를 무대로 한 이 전투는 엎치락뒤치락하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각 캐릭터의 시선을 따라가는 카메라들 덕분에 마치 게임 속에 들어가 직접 전투하는 기분마저 든다. 1편에서 죽었던 쿼리치 대령의 귀환도 관전 포인트다. 이 부분을 보면 캐머런 감독이 1편의 이야기를 2편으로 이어가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유일한 단점은 긴 상영시간이다. 3D 안경을 쓴 채 192분 동안 스크린을 바라보는 걸 부담스러워할 관객이 적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한 모든 걸 스크린에 담으려 한 캐머런 감독의 욕심이 보이는 대목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압도적인 영상미와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이 모든 단점을 덮기에 충분했다.
짧은 팁 하나. 영화관에 가기 전에 1편을 ‘복습’하는 게 좋다. 어떤 장면과 설정에서 연결고리를 만들어냈는지 찾아내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김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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