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현의 디자인 싱킹] 디자인에도 필요한 '톨레랑스'

입력 2022-12-14 17:48   수정 2022-12-15 00:17

‘환자 중심의 서비스 디자인’ 이것이 미국 병원들이 고객 만족도 1위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메이오 클리닉은 2008년 아이데오 디자인 컨설팅사와 협업해 CFI(Center for Innovation)를 세웠다. 이 병원은 그동안 의료 권위주의에서 오는 환자와의 불통, 개인정보 노출, 부족한 정보, 위압감 등 고객의 불편을 서비스 디자인으로 해결했다. 초진 환자의 진료 시간은 45분을 반드시 유지토록 했다.

환자는 의사에게 자신의 증상을 주관적으로 호소하며, 의사는 환자에게 데이터를 통해 객관적으로 질병을 설명한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친밀함이 이뤄질 때 자연히 오진이 줄고 환자의 불안도 줄어든다. 한 달 뒤에 작성되던 퇴원기록서도 환자가 퇴원하는 즉시 작성토록 했다. 알아보기 어렵던 의사들의 수기 처방전은 디지털에 능숙한 젊은 레지던트나 인턴의 태블릿 처방전으로 대체됐다.

병원은 환자들이 존중과 편안함을 누려야 하는 곳이다. 메이오 클리닉은 약국 내 작은 칸막이 설치로 사생활 보호를 가능하게 했다. 환자에게는 진료 시간과 진료실의 동선 정보를 제공해 기다리는 불안과 장소를 찾는 어려움을 해결했다. 어린이가 채혈 시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해 공포를 덜 느끼도록 했다. 플로리다 아동병원은 디즈니와의 협업을 통해 아동 환자 만족도를 1순위로 끌어올렸다. 병원 곳곳에 디즈니 캐릭터를 배치해 아이들이 마치 디즈니랜드를 찾았을 때처럼 설렘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의료 디자인' 환자 마음까지 치료

일본 의료 서비스 디자인 사례도 있다. 가타종합병원은 디자이너 하라 겐야와 프로젝트를 통해 고령층에 친숙한 병원을 만들었다. 큰 글씨 표지판을 사용했고, 화살표 길이를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에 비례하게 디자인해 환자가 남은 거리를 예상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우메다병원의 산부인과·소아과는 흰색 기저귀 천에 사이니지를 디자인해 청결함과 따뜻함을 줬다.

한국의 공공의료기관인 시민공감서비스디자인센터(HUDC)는 ‘감염병 위기 대응 커뮤니케이션 가이드’를 디자인해 감염병 확산을 방지했다. 동네 주치의를 추구하는 ‘제너럴닥터’는 병원을 카페처럼 디자인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의사들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대화의 방식이 바뀐 것이다. 메이오 클리닉과 원격진료 및 협진 서비스를 하는 명지병원의 케어 디자인센터는 건강검진센터를 자연친화적으로 디자인했다. 강북삼성병원은 웰니스(웰빙+피트니스)를 위해 기도실을 만들었고, 세종병원은 건물 곳곳에 예술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치유 공간을 제공했다.
사회약자 배려하는 디자인 사회
KAIST 디자인팀은 튜브에 공기를 주입해서 만드는 ‘코로나 중증 환자 치료용 이동형 감염 병동(mobile clinic module, MCM)’을 만들어 국내외의 음압병실 부족을 해결했다.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나 의료서비스는 세계적 수준이 됐다. 하지만 우리나라 병원을 환자 중심으로 바꾸는 것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갈릴레이의 천체망원경처럼 패러다임 트리거가 필요하다.

정체성(identity)은 나와 타인의 관계 속에서 참된 나를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국가·민족의 정체성도 세계 속에서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찾을 수 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내가 보는 관점과 상대방이 보는 입장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진실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의 움직임에도 기준과 질서가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보편적 디자인, 즉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다. 장애인을 포함해 어린이, 고령자, 임산부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까지도 존중하고 배려하는 디자인을 말한다. 나를 위한 디자인을 넘어 타인을 위한 디자인이 될 때 진짜 유니버설 디자인이 된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생산 활동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고, 주주에게 그 이윤을 환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존을 넘어 존경받는 기업이 되려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까지 고려해야 한다. 타인과 나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며 서로의 차이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지니는 것. 즉 톨레랑스(관용정신)가 디자인에도 필요하다.

윤주현 서울대 미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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