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상 경영’을 선언한 삼성전자가 32년간 운영해 온 ‘지역전문가’ 파견을 전면 취소했다. 최소 내년까지는 지역전문가 선발 및 파견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 계열사까지 합쳐 연간 100~200명 규모로 보내온 글로벌 인재 양성의 맥이 끊어지게 됐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는 지난 9월부터 지역전문가로 선발된 120여 명에 대한 파견 취소를 통보했다. 이들은 2020년 지역전문가로 뽑혔지만 그동안 코로나19로 파견이 미뤄졌다. 삼성인력개발원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직원 안전에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 취소 사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는 최근 코로나19 방역이 완화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보다는 경영 여건 악화라는 현실적인 탓이 클 것이라고 관측했다. 지역전문가는 한 명당 연봉 외에 1억원 이상 체류비를 지원받는다.
지역전문가는 3년 차 이상 직원을 선발해 1~2년간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익히도록 지원하는 자율관리형 해외 연수 프로그램이다. 고(故) 이건희 선대 회장이 1990년 ‘글로벌 삼성’을 외치며 만든 제도다. 도입 초기엔 내부 반대가 적지 않았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데다 당장 현장에서 인력을 빼는 게 부담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국제화된 인력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밀어붙였다.
삼성은 2019년까지 총 90여 개국에 지역전문가 7000여 명을 파견했다. 1997년까지는 주로 선진국 중심으로 파견하다가 중국, 러시아, 인도 등 신흥시장으로 범위를 넓혔다. 지역전문가는 주로 해외 인적 네트워크를 쌓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역할을 해왔다.
삼성 내부에선 지역전문가 운용이 잠정 중단되는 데 따라 인재 관련 투자가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역전문가 파견은 그만큼 많은 비용을 투입할 정도로 회사가 인재 양성에 적극 나선다는 상징이었다는 전언이다.
지역전문가로 선발됐다가 파견 취소 통보를 받은 직원들은 허탈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지역전문가가 되기 위해 사내 공모, 면접 등 치열한 경쟁을 뚫었기 때문이다. 삼성은 취소된 직원 중 희망자에 대해 추후 선발 및 파견 재개 때 가산점을 주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이 비상 경영 차원에서 지역전문가 파견을 취소했다는 건 억측”이라며 “코로나19 상황이 좋아지면 내년 하반기에는 선발을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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