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세계화의 재구성…수출 패러다임 바꿔라

입력 2022-12-15 00:39   수정 2022-12-15 00:40

분업은 자본 축적과 함께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말하는 ‘번영의 원리’로 통한다. 스미스는 분업은 인간 본성의 하나인, 거래하고 교환하고 교역하는 성향, 이른바 ‘교환성향(propensity to exchange)’의 필연적 결과라고 말한다. 분업이 교환을 낳는 게 아니라 교환이 분업을 낳는다는 얘기다. 개인과 기업, 국가 단위 전문화도 교환성향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의미가 된다.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충돌로 ‘탈(脫)세계화’가 시작됐다는 전망이 많았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가 이런 전망과 사뭇 뉘앙스가 다른 현실이 전개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지식 등 무형재와 서비스, 인재가 만들어내는 글로벌 교역이 상품의 바통을 이어받아 팬데믹 중에도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데이터 흐름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는 분석은 자본주의가 ‘데이터주의’로 가고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또 각국의 자급 선언과 달리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중요 제품이나 자원을 수입에 의존하는 분업구조는 쉽게 바뀌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 안보를 내세운 자국 중심주의로 글로벌 가치 사슬이 변화에 직면해 있지만, 탈세계화가 아니라 ‘세계화의 재구성’으로 봐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무형재와 서비스, 인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교환성향이 만들어낸 분업이 출현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새로운 교환성향의 진원지가 데이터주의를 이끄는 ‘디지털 전환’임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한국의 수출 엔진이 식어가고 무역적자 행진이 이어지면서 비상이 걸리고 있다. 정부는 내년에 수출 살리기에 올인하겠다고 말한다. 올인하기 전에 진단부터 제대로 돼야 한다. 맥킨지 보고서의 결론이 맞다면 탈세계화로 수출이 안 된다는 핑계는 잘못된 것이다. 세계화의 재구성 흐름에 재빨리 올라 타거나 선도하는 산업 전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맞는다. 제조의
지식·서비스 비즈니스 모델로의 전환, 디지털 전환 시대가 요구하는 소재·부품·장비, 소프트웨어, 금융, 인재 등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지 않으면 수출 살리기는 일시적인 대책일 수밖에 없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2023년 세계대전망> 국가편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적대감이 심화하는 상황에 직면한 한국은 주요 무역 파트너인 중국과의 관계를 비용으로 치르고 핵심안보 동맹국인 미국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라고 봤다.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얼마의 비용으로 치를지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에 달린 문제다. 한국의 산업 전환 성공 여부에 따라 비용이 극과 극으로 달라질 테니 말이다.

대중 수출이 급감하자 마약 같은 ‘중국 역할론’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정부도 내심 중국의 ‘제로 코로나’ 봉쇄정책에 변화가 생기고 대중 수출이 살아나길 기대하는 눈치다. 현실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수출이 살아나면 산업 전환 동력이 확 떨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게 반복되면 한국은 중국의 ‘보이는 손’에 따라 춤추는 운명에서 벗어날 길이 없게 된다.

정부가 수출 살리기에 올인하겠다면, 중국보다 빠르게 디지털 전환 분야에서 세계와 교역하는 새로운 장르를 창출해야 한다. 에너지 비용에 늘 발목이 잡히는 한국으로선 중국보다 10년 빠른 탄소중립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도 절박한 과제다. ‘디지털 레닌주의’로 무장한 공산당과 인민, 기업이 삼위일체가 돼 국가가 위험을 감수하는 중국이다. 머뭇거리다간 인공지능(AI)이 아니라 중국이 한국의 일자리를 앗아가고 말 것이다.

미국의 경제·외교전략은 지정학적으로 결정돼 왔지만, 미·중 충돌 양상이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미국이 한국·일본과 동맹을 맺고, 서유럽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손잡고, 중국과 수교한 것 등은 다 옛 소련 봉쇄 목적이 있었다. 지금 미국은 패권을 넘보는 중국과 충돌하고, 에너지 독립으로 사우디와의 관계가 멀어지고 있다. 그 틈을 타 중국은 사우디와 손잡고, 러시아와 밀월을 과시한다. 어느 날 미국이 중국과 모종의 합의를 하고 ‘신(新)먼로주의’로 돌아가는 날이 오지 말란 법도 없다. 중국에는 최상이지만 한국엔 중국의 변방국으로 전락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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