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남따라 규제'의 위험성

입력 2022-12-15 17:26   수정 2022-12-16 00:15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최근까지 일본 도쿄에 가족과 은신하고 있었다는 보도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궁지로 몰았을까. 설이 분분하긴 한데, 2020년 10월께 마윈의 발언이 ‘트리거’였다는 데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당시 마윈은 알리바바의 자회사인 ANT그룹의 미국 상장을 정부가 가로막자 “위대한 혁신가들은 감독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뒤떨어진 감독은 무서워한다”며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러잖아도 마윈은 ‘시진핑의 사람들’로부터 견제의 대상이었다. 마윈이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이끄는 상하이방의 자금줄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마윈을 ‘귀양’ 가게 한 설화(舌禍)는 그동안 촘촘히 박힌 미운털의 총합이었던 셈이다.
준정부 역할 하는 빅테크
마윈 축출을 빅테크, 혹은 플랫폼 기업의 국가에 대한 도전이라는 시각에서도 해석할 수 있다.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이후로 근대 국가는 ‘폭력의 합법적 독점’이란 개념을 토대로 설명돼 왔다.

현대 사회에서 국가는 좀 더 광범위한 독점을 필요로 한다. 화폐(금융)와 정보(데이터)가 국가를 국가답게 만드는 핵심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마윈의 알리바바그룹은 시진핑 체제에 위협 그 자체였다. 1999년 설립 이후 전자상거래, 온라인 결제, 기업 간(B2B) 서비스, 클라우드 컴퓨팅 등의 영역에서 엄청난 속도로 커가며 데이터와 금융을 장악했다.

유럽연합(EU)이 아마존, 구글, 메타, 애플 등 미국의 빅테크를 겨냥해 디지털시장법(DMA)을 제정한 것도 ‘아메리칸 플랫폼’을 위협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EU는 유럽 시민들의 거의 모든 정보가 미국 기업 서버에 들어가 있는 것을 EU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봤다. 자국 플랫폼 기업 말살을 감수하고서라도 DMA를 강행한 이유다.

최첨단 테크(기술)로 무장한 플랫폼은 태생적으로 국가와 닮았다. 플랫폼 기업은 승자 독식을 지향한다. 오늘날의 거대 플랫폼이 전통적인 대기업과 다른 점은 비즈니스 세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새로운 규칙과 표준을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피터팬 규제'에 몰린 韓 플랫폼
미 재무부 비서실장을 지낸 셰릴 샌드버그 전 메타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우리는 정부와 더 비슷한 측면이 있다. 진짜 공공정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한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개발한 저궤도 위성 인터넷 서비스인 ‘스타링크’는 현대전의 양상을 바꿔놓고 있다.

국가를 닮은 플랫폼은 ‘양날의 칼’이다. 중국은 플랫폼 기업을 체제 위협으로 간주했지만, 미국은 ‘활인검’으로 적극 활용 중이다. 애플, 구글 등 시가총액이 조(兆)달러에 육박하는 ‘테크 자이언츠’를 겨냥한 반독점법안은 발의만 돼 있을 뿐 언제 통과될지 하세월이다. 미국의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에 따르면 아마존과 구글에 기대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수천만 명의 미국인은 반독점법의 강력한 반대론자들이다.

국내에서도 미국과 EU를 따라 네이버, 카카오 같은 대형 플랫폼 기업의 시장 독식을 선제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종의 ‘피터팬 규제’다. 공정거래법이 속성상 초국가적인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무작정 따라 하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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