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고금리 고환율이 겹치면서 내년을 바라보는 기업들의 시선은 무척 불안하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예고된 상황인 만큼 비용 절감과 긴축 전략을 가동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어렵다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은 한국 기업과 산업들의 성공 방정식이 아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이유도 없다. 한국 주력 기업들은 반도체 전기자동차 수소에너지 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에서 이미 많은 투자를 진행해 적잖은 성과를 내고 있다. 신구 산업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포트폴리오는 제조강국인 독일과 일본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모자란 기술과 역량은 채우고, 선도적인 산업은 격차를 벌려가는 전략이 긴요하다.
우선 반도체산업의 체질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 메모리반도체는 선제적 투자와 압도적인 수율로 지난 20여 년간 세계시장을 호령해왔다. 하지만 메모리에 안주하고 있는 사이 전 세계에 불어닥친 디지털과 인공지능(AI) 혁신은 고효율 반도체와 파운드리 생산에 거대 시장을 열었다. 더 이상 늦기 전에 해당 분야 기술력과 인재를 확보하는 과감한 투자를 통해 새로운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
자동차 부문에선 현대차·기아가 전기차와 수소차 분야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무한경쟁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국면에 진입한다는 측면에서 기회와 위기가 공존한다. 폭스바겐 GM 도요타 같은 전통 기업 외에도 테슬라 애플 등 자율주행을 앞세운 세계 최고의 기술기업들이 전기차 시대의 패권을 노리고 있다. 국내 자동차업계가 달라지는 산업지형에 걸맞은 생태계를 갖추지 못하면 지금껏 닦아놓은 자동차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한국은 작은 나라다. 미국 기업들에 비해 테스트베드가 모자라고 인재와 기술 축적이 얕으며 규제도 많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어렵지 않은 적이 있었나 싶다. 미래 산업에 투자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5년, 10년 뒤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 하늘이 무너져도 필요한 투자는 반드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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