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블랙컨슈머(악성 소비자)의 과도한 요구와 악성 리뷰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 음식 배달 시장이 급성장한 가운데 배달앱 내 '상호 평가' 도입 등 자영업자 안전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한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황당한 내용의 요청사항이 담긴 배달앱 주문서 사진이 화제가 됐다. '오늘 자 레전드'란 제목으로 공유된 이 사진을 보면 한 고객은 1개당 200원짜리 핫소스 3개를 주문하면서 요청사항에 "리뷰이벤트 스파게티 부탁드립니다"라고 적었다. 대다수 업장이 포장 주문의 경우 최소 주문금액을 설정하지 않는 점을 노린 일종의 '꼼수'인 셈이다. 리뷰이벤트는 고객들에게 좋은 후기를 부탁하고자 손님에게 음료 등 상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업장 자체 행사를 말한다.
또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배달 앱에서 '쌀 알레르기 있음'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한 고객이 음식을 주문했는데 식당에서 '밥'을 빼고 음식을 배달한 사연도 화제가 됐다. 고객이 리뷰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요청사항에 닉네임과 함께 받고 싶은 서비스를 적어 가게 측이 이를 오해해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리뷰 캡처를 보면 해당 고객은 별점 3점을 주면서 "도시락에 밥이 빠져 있어 급하게 편의점 즉석밥을 사 먹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가게 사장은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했다.
이 밖에도 그간 온라인에서는 "커피에서 발 냄새가 난다"는 악성 리뷰, 중국산 김치를 사용하는 식당 리뷰에 알몸 김치 파동 사진을 올리며 "절대 먹지 않는다"는 등 눈살을 찌푸리는 리뷰들이 논란이 된 바 있다.
자영업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 누리꾼은 "악성 리뷰를 다는 사람이 작성한 리뷰를 예전 것부터 쭉 보면 화가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며 "진짜 칼만 안 들었지, 잠재적 살인자"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자영업자 10명 중 약 8명이 리뷰 피해를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전국의 배달앱을 사용하는 소상공인 음식점 및 주점업 사업체 300개소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업장이 배달앱을 활용한 기간은 평균 3.1년, 1개 업장마다 평균 2.5개의 배달앱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달앱 활용 업장 중 70.3%는 고객 리뷰를 관리하는 것으로 조사됐고, 78.0%가 리뷰 관련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피해를 경험하지 않은 업장은 단 21.0%에 그쳤다. 피해 경험이 가장 많은 항목은 △고객의 잘못을 음식점의 실수로 전가하는 피해(79.0%) △이유 없는 부정적인 평가(71.7%) △리뷰를 담보로 하는 무리한 서비스 요구(59.7%) 등 순이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코로나19 이후 배달앱 이용이 급증하고 있으나 소비자와 음식점 모두 현행 배달 플랫폼 서비스 관련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며 "소상공인 정책을 전담하고 있는 중기부가 앞으로 배달앱으로 인한 피해방지 등 적극적인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가 속출하자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고객의 별점을 매길 수 있는 '쌍방향 별점제'와 '리뷰 실명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유야무야 돼버린 형국이다. 지금은 폐지된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한 요식업 종사자는 "전 국민적으로 쓰이고 있는 배달앱 리뷰에 사용자들의 악의적인 댓글로 인해 소상공인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도를 넘은 지 오래"라며 "최근 소상공인들의 안타까운 생명까지도 앗아갈 정도의 문제가 됐지만, 여전히 어떠한 대책도 마련되지 않았다"고 호소한 바 있다.
전문가들도 배달앱 내 자영업자와 고객 간 '상호 평가' 시스템 도입이 자영업자의 리뷰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배달앱 내 상호 평가(쌍방향 별점제)를 도입하는 게 리뷰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배달앱에서도 무조건 리뷰를 제한하는 게 아닌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충분히 헤아리고, 최대한 반영하는 방향으로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량한 소비자들을 제한하자는 게 아니라 '문제가 있는 일부 소비자들에게 문제 있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의 경우 에어비앤비가 호스트(숙소 운영자)와 게스트(숙박객)가 서로를 평가한다. 상호 평가해도 문제가 되는 게 없으니 계속해서 이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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