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희한하게 젊은 사람들이 여길 오네”, “유명한 커피집이 생겼다더니 거기 보러 왔는가베(왔는가봐)” 등 거리 곳곳에서 장사를 하거나 한약재를 사러 온 70~80대 남짓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기하다는 듯한 눈길도 거두지 않았다.
다양한 한약재 판매로 유명한 이곳에 스타벅스가 생겼기 때문이다. 시장 안쪽에 스타벅스가 자리를 잡는 것이 흔치 않은데, 그것도 60년이 넘은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니 흔히 보기 어려운 낯선 풍경이다. 정식 개장을 하기 전인데도 밖에서 외관을 구경하려 이곳을 찾은 이들도 종종 보였다. 심지어 이날은 눈이 펑펑 내리고 체감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등 최강 한파가 불어닥친 날이었다.
흔히 스타벅스가 들어서는 곳은 국내에서 가장 목이 좋은 상권으로 꼽힌다. 경동시장 안쪽에 생긴 스타벅스 '경동 1960점'은 통상 도심 한복판이나 지하철 역세권, 대학가처럼 유동인구가 많고 상권이 발달한 곳에 매장을 내오던 스타벅스의 기존 출점 전략과는 동떨어진 매장이다. 각종 건어물이나 곡물, 인삼 등을 파는 전통 재래시장 가게들 사이에 어지럽게 섞여 있는 매장 입구는 한 눈에 봐도 이질적이다. 스타벅스는 왜 이곳에 매장을 냈을까.
이번 경동1960점은 지난해 경동시장 측에서 먼저 스타벅스에 매장 운영을 제안하면서 개장했다. 젊은 세대에 인기 있는 스타벅스가 시장 내부로 들어오면 전통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에서다. 스타벅스는 지역상권과 상생하는 의미에서 경동시장 측 제안을 받아들였다. 앞으로 이 매장에서 판매하는 모든 품목에서 300원씩 따로 떼 기금을 적립해 경동시장 활성화에 사용한다. 시장 관계자에게는 바리스타 채용 기회도 제공한다.
내부는 4층짜리 경동시장 건물 중 1960년대 지어진 뒤 최근까지 사용되지 않던 옛 경동극장이 있던 3~4층을 개조해 각자의 특성을 살린 공간을 만들어 냈다. 3층부터 4층으로 이어진 옛 극장 관람석을 200석 규모 계단식 좌석으로 되살렸다. 영화 스크린이 있던 자리는 매대로 바뀌었지만, 그 앞 극장 무대가 있던 공간 일부는 공연 무대로 살렸다. 향후 지역 예술가들에게 제공하며 정기적으로 공연을 열 계획이다.
이밖에 매장 곳곳에 60년대 옛날 극장의 추억을 되살리는 인테리어들이 눈에 띈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지붕 골격을 유지하는 나무 널판이 그대로 드러나 그간 쌓여온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극장식 조명이 비춰진 주문대는 스타벅스에서 팔고 남은 재고 텀블러를 파쇄해 만들어진 재활용품이다. 매장 뒤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작은 창문 너머로 영사실이 보인다. 매장 측은 이 공간을 직원들을 위한 휴게실로 개조했다. 고객들이 주문한 음료가 나오면 한쪽 벽면에서 닉네임이나 주문번호가 떠오른다. 영사기로 비춰 반사시킨 화면이 마치 영화 크레딧을 보는 듯하다.
경동시장 일대에서 매장은 이미 큰 화제거리다. 시장 내 스타벅스 인근에서 수산물을 파는 한 상인은 “나이든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조용하고 다소 침체됐던 시장 일대가 옛날처럼 북적이고 활성화됐으면 좋겠다”며 “벌써부터 젊은이들이 스타벅스가 있다며 시장을 방문하는 모습들을 보니 그 자체로도 활기가 돈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 매장은 16일부터 정식 영업을 시작했다. 손정현 스타벅스 대표이사는 "오래된 공간을 트렌드를 가진 공간으로 변화시켜 우리의 전통시장이 활성화되길 희망한다"며 "'경동1960점'에서 지역사회와의 상생과 함께 모든 세대가 가치 있게 즐길 수 있는 스타벅스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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