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서도 ‘성(性)’은 매혹적인 금기다. 인간의 원초적 욕망, 이를 관리하려는 사회 질서는 긴장 관계에 있다. 과거에는 더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건 사실상 금지였다.
1928년 세상에 나온 D H 로렌스의 장편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이런 금기를 깨부순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이 책을 토대로 제작된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로 공개된 걸 생각하면, 100년 전 이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이 느꼈을 충격을 짐작할 수 있다.
귀족 기혼 여성인 콘스탄스(코니) 채털리는 시골 마을에서 남편 클리퍼드 채털리를 간호하며 지낸다. 클리퍼드는 1차 세계대전에서 입은 부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남편과의 관계에 만족하지 못하던 코니는 사냥터지기 멜로스와 사랑에 빠진다.
노골적인 정사 묘사로 외설 논란에 시달렸다. 계급을 초월한 사랑, 욕망에 충실한 여성 등은 당시 충격적인 소재였다. 로렌스는 이탈리아에서 최종본을 완성한 뒤 현지 출판사들로부터 성 묘사와 비속어를 들어내면 출판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지만, 거절하고 자비로 책을 낸다. 영국과 미국에선 아예 출판이 금지됐다. 이 소식이 되레 독자의 관심에 불을 붙여 불법 해적판이 난무했다. 로렌스 사후 1959년에야 소송 끝에 미국에서 합법적 출판이 가능해졌다.
야하기만 했다면 고전 반열에 오를 리 없다. 로렌스는 성이라는 소재를 통해 ‘육체의 회복’을 꿈꿨다. 돈, 기계, 이성이 지배하는 산업사회에서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간과 인간의 육체적 접촉, 내밀한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봤다. 로렌스는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쓴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멋진 신세계>를 쓴 올더스 헉슬리 등 당대 지성인들과 교류하며 자신만의 철학을 완성했다. 작품 속 멜로스는 코니와 육체적 관계를 맺으며 생각한다. ‘나는 돈과 기계, 그리고 세상의 생명 없이 차갑고 관념적인 원숭이 작태에 맞서 싸우고 있다.’
남작 부인 자리를 버리고 사랑을 찾아 떠나는 코니의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코니가 클리퍼드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책은 이렇게 묘사한다. “이제 조용하고 섬세하게 그녀는 뒤엉킨 그의 의식과 자신의 의식을 풀어내고 있었다.”
‘인간답게 산다는 건 무엇인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도발적인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표현의 자유, 금기와 예술의 관계, 문명과 본능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20세기에 쓰인 이 고전 작품이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도 매혹적인 이유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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