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피아니스트는 손으로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한다.” -작곡가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영원불멸의 아름다움으로 무려 두 세기가 지난 현재까지도 전 세계 피아니스트의 무대에서 매일같이 울려 퍼지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전설의 작곡가 쇼팽의 ‘녹턴(야상곡·夜想曲) Op.9 No.2’ 곡이 그 주인공입니다. 한국인 최초의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과 밴 클라이번 콩쿠르 최연소 우승자 임윤찬도 평소 애정하는 작품으로 이미 여러 차례 무대에 올린 곡이기도 합니다. 높은 작품성뿐 아니라 섬세하고도 우아한 선율과 그에서 비롯되는 처연하면서도 감미로운 분위기로 대중성까지 고루 잡은 세기의 명작으로 꼽히죠. 실제로 이 작품은 평소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전혀 없더라도 일단 들으면 "분명히 어디서 들어봤는데"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올 정도로 우리의 귀에 친숙한 곡입니다.
“쇼팽은 음악으로 진실한 대화를 한 작곡가다. 그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모든 말은 녹턴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쇼팽이 활동하던 시기가 비르투오소적(기교가 돋보이는) 작품이 성행하던 때였단 점을 감안하면 그의 음악이 지니는 가치는 더욱 귀중합니다. 화려한 기교와 빠른 음표로 점철된 수많은 음악 사이에서 안정적인 템포와 청중의 심금을 울리는 서정적인 선율로 자신만의 아름다움,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한 쇼팽의 녹턴은 음악사적 의의가 크다고 평가받고 있죠. 남들과의 외적 차이에서 자신의 미(美)를 평가하고 본연의 아름다움보다는 보여지는 아름다움이 미의 기준이 된 오늘, 쇼팽의 녹턴을 조명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작품이 전하는 울림은 이전과는 다른 파장을 만들며 우리의 마음에 와닿을 것입니다. 피아노 본연의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을 유려한 선율로 표현해 인간의 감정 전체를 뒤흔든다는 마성의 음악, 쇼팽의 녹턴 Op.9 No.2 곡을 가까이 들여다보겠습니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 독보적인 색깔로 하나의 장르가 되다
먼저 작곡가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폴란드 출신의 쇼팽은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모차르트에 대적할 만한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6세 때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운 그는 이듬해에 폴로네이즈 g단조를 발표하고, 8세가 된 1818년에 첫 공개 연주회를 열어 신동으로 이름을 떨칩니다. 그의 첫 피아노 스승인 보이치에흐 지브니가 쇼팽이 12살이 되던 해 더 가르칠 게 없다며 레슨을 중단해버린 것은 유명한 일화죠. 이후 바르샤바 음악원에 들어가 요제프 엘스너에게 화성법과 대위법을 배운 그는 15세에 작품 ‘론도’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작곡가로서의 시작을 알립니다.182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2번의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 쇼팽은 2년 뒤 프랑스에 정착해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에 매진합니다. 그렇게 그가 세상에 내놓은 작품은 무려 200여 편. 리트, 실내악곡과 관악 또는 현악을 위한 작품이 일부 있으나 대다수 작품이 피아노를 위한 음악으로 채워졌죠. ‘즉흥 환상곡’ ‘녹턴’ ‘빗방울 전주곡’ ‘영웅 폴로네즈’ ‘장송 행진곡’ ‘강아지 왈츠’ 등 세기의 피아노 걸작이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입니다. 집중해야 할 지점은 단순히 다작했다는 사실이 아닌 그의 작품 활동이 피아노 음악사에 지대한 변화를 이끌었단 점입니다. 먼저 그는 피아노의 기교적 음악적 표현 지평을 대폭 확대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당시 일반적이었던 화려하고 힘찬 비르투오소적 연주법에서 벗어나 단순한 선율에 레가토, 악센트를 활용하거나 리듬과 음색의 변화를 주는 작곡 방식으로 피아노의 서정적 매력을 극대화한 그의 작품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 대담한 화성 진행과 벨칸토 오페라 창법에서 영향받은 화려한 꾸밈음을 더해 피아노를 주도적으로 노래할 수 있는 악기로 위상을 높입니다. 아울러 그는 피아노 음악 장르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피아노 협주곡과 소나타는 물론 발라드, 스케르초, 전주곡, 마주르카, 녹턴, 왈츠 등 모음곡 형식의 피아노 작품을 대거 작곡해 지금의 다채로운 피아노 레퍼토리의 틀을 구축합니다.
녹턴에서는 작곡가 존 필드의 양식을 발전시키고 살롱음악에 그쳤던 왈츠에서는 예술적 정취를 새로 담아냈으며, 당시 악곡 중 일부에 불과했던 스케르초를 하나의 독립된 악곡으로 신선한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 모두 쇼팽의 업적입니다. 쇼팽에게 '피아노의 시인'이라는 칭호가 무엇보다 어울리는 이유입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피아노 걸작 속에서도 ‘녹턴 Op.9 No.2’는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되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쇼팽이 처음으로 출판한 3곡의 녹턴 중 두 번째 작품인 이 곡은 쇼팽의 서정성과 시적 표현력이 응축된 결정체로 평가받죠. 명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선율이 단순하고 기교적 어려움도 크지 않아 피아니스트라면 무대에서 한 번쯤은 연주해 볼법한 작품으로 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쇼팽의 섬세한 감정을 이해하고 이를 온전히 표현할 줄 아는 피아니스트는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적습니다. 하나의 음악적 흐름에서 어떠한 음도 놓치지 않고 노래를 이어가는 음악성과 세밀한 음색 컨트롤 역량, 반복된 선율을 다채롭게 하는 표현력 등 피아니스트의 연주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약 200년간 끊임없이 연주되며 피아니스트와 청중의 열렬한 애정을 받는 불후의 작품 쇼팽의 ‘녹턴 Op.9 No.2’. 피아노 본연의 순수한 음색을 신비로우면서도 몽환적인 선율로 풀어내 청중으로 하여금 자신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는 음악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섬세하면서도 유려한 선율과 루바토의 고급스러움…신비로운 분위기 구현
작품은 피아노 연주자의 서정적인 오른손 선율로 시작됩니다. 햇볕이 비치는 연못에 깨끗한 물방울이 차례로 흐드러지듯 유려한 선율이 펼쳐지면 피아니스트의 왼손에서 잔잔한 화음 연주가 뒤따르면서 풍부한 색채를 더합니다. 평소 화려한 왼손 연주를 즐겼던 쇼팽이지만 이 작품에서만큼은 8분음표 3개를 한데 묶어 반복하는 비교적 단순한 리듬 음형을 쓰고 있죠. 오른손의 단순하면서도 서정적인 선율을 더 명료하게 전달하기 위한 쇼팽의 의도가 담긴 부문으로 해석됩니다. 어느 한 손도 빠르거나 화려한 선율을 가지지 않는 만큼 자칫 잘못하면 듣기에 단조롭다고 느껴질 수 있는데, 쇼팽은 선율에 갖가지 음을 덧붙여 연주토록 하는 ‘꾸밈음’을 적재적소에 활용함으로써 이같은 우려를 불식시킵니다.
첫 소절에서 등장하는 ‘턴(꾸밈음)’은 원래 음의 위아래 음을 한번 훑어서 다시 원래 음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으로 짧지만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다음 소절에서는 리듬 변화와 더불어 잔결꾸밈음(원래 음 바로 위의 음을 빠르게 연주), 앞꾸밈음(원래 음 앞에 짧게 붙는 음을 연주), 트릴(원래 음의 바로 위의 음을 빠르게 반복)이 대거 등장시키면서 전과는 다른 처연한 아름다움을 드리웁니다. 그러면 이내 피아노(p)와 피아니시모(pp)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음을 읊어내듯 시작하는 새로운 선율이 피아노 틈새로 흘러나오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후 음의 길이를 살짝씩 늘이는 포코 리타르단도(poco ritardando)와 포코 랄렌탄도(poco rallentando)가 등장하면서 피아니스트의 선율이 손을 타고 자연스럽게 흐르면 이전에 없던 포르찬도(fz·특히 세게), 크레셴도(점점 커짐), 디크레셴도(점점 작아짐) 등으로 셈여림 차이가 두드러지면서 응축된 감정이 터지듯 표출됩니다. 이때 등장하는 반음계로 떨어지고 다시 올라서는 부분은 반짝이는 물방울이 굴러가듯 청아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러면 이전과는 다른 조금은 정적인 선율이 과거를 회상하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이때 루바토(rubato·박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로 연주가 진행되면서 쇼팽의 작품 속 특유의 고급스러움이 더욱 극적으로 표현됩니다.
루바토 구간에서는 왼손은 비교적 정확한 박자를 따르되 오른손에서 박자에 구애받지 않고 피아니스트가 추구하는 음악적 흐름을 가지고 연주하는 만큼 보다 자연스러운 전개가 이뤄집니다. 양손이 살짝씩 어긋나면서도 교묘히 맞물리는 지점은 옅은 긴장감과 그의 해소를 느끼도록 한다는 점에서 청중의 귀를 사로잡죠. 이후 풍성한 옥타브 화음이 차례로 하행하면서 피아노 소리가 전체 홀을 감싸면 이내 짧은 카덴차(악곡의 마침 직전에 등장하는 것으로 독주자의 기교를 발휘하는 부분) 형식의 빠른 16분음표 연주가 고음역에서 반복되면서 불안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이후 양손이 작품 속 어떤 선율보다 작은 움직임과 집중된 호흡으로 피아니시모(pp)에서 피아니시시모(ppp)로 진행되는 선율을 표현하면 이내 저음부에서 모든 화음이 하나로 모이면서 작품은 사라지듯 조용히 막을 내립니다.
독보적인 감수성과 심장을 파고드는 섬세한 선율로 자신의 작품을 하나의 장르로 만들어낸 위대한 작곡가 쇼팽. 그의 녹턴은 마치 피아노가 사람에게 노래를 불러주듯 따스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지니는 데에서 대체 불가한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쇼팽이 5분 남짓의 짧은 음악에 담아낸 것은 시대상에 걸맞은 화려함, 대중이 원하는 자극적인 전개와 폭발적인 에너지 그 어떤 것에도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피아노를 사랑하는 마음을 토대로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선율을 끊임없이 고민해 오선보에 적어낸 것뿐. 작지만 강한 이 작품이 나의 가치를 끝없이 의심하고 남의 시선에 붙잡혀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을 깨우치도록 하는 바람이 되길. 오늘만큼은 오로지 남이 아닌 나의 눈으로, 타인의 기준보다 자신의 뚜렷한 신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진정한 자신의 미(美)를 이해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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