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국제정치의 일부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국가 간 경쟁은 민족주의가 충돌하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특히 지구촌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축구는 국제정치와 외교에 영향을 미친다. 국제축구연맹(FIFA)에는 유엔보다 많은 211개 국가대표팀이 소속돼 있다. 올해 3월 FIFA는 러시아 국가대표팀의 국제대회 출전을 금지했다. 일부에서 FIFA가 유엔보다 더 강력한 기구라고 말하는 이유다.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초연결 시대 세계인의 아이콘이다. 대중의 생활방식, 문화, 정치 및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미얀마의 정글, 브라질의 파벨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빈민가 청소년들은 호날두와 메시를 꿈꾼다.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로 축구도 국가 간 화해와 대화의 촉매제로 작용한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4년 성탄절에 영국군과 독일군은 ‘크리스마스 휴전’을 하고 축구 시합을 했다. 나이지리아 내전 당시 양측은 펠레의 경기를 보기 위해 이틀간 휴전했다. 2005년 코트디부아르가 카메룬을 꺾고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하자 주장 디디에 드로그바는 동료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내전 종식을 호소했다. 총성은 멈췄고 평화회담이 시작됐다.
역기능도 있다. 국가의 위신과 명예를 걸고 펼쳐지는 승부의 속성상 분쟁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소위 ‘축구전쟁’을 벌였다. 1990년 유고 자그레브에서 열린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경기는 유혈 폭력으로 중단됐고 악화한 관계는 전쟁으로 이어졌다. 2020년 유럽축구선수권 대회에서 우크라이나 대표팀은 크림반도가 포함된 지도를 유니폼에 새겨넣어 러시아와 갈등을 빚었다.
초강대국인 G2가 축구에서는 국력에 걸맞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축구 인기가 높지 않은 것은 문화적 요인이 크다. 미국의 4대 스포츠인 미식축구, 농구, 야구, 아이스하키와 달리 축구는 다득점 스포츠가 아니다. 공정성과 극적인 역전 기회를 중요시하는 정서와도 거리가 있다. 하프타임에만 광고를 할 수 있어 상업성에도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축구 강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우선, 축구를 종교처럼 생각하는 히스패닉계 인구가 급증하는 추세다. 최근 청소년과 여성을 중심으로 축구 인구가 늘고 있다. 여성 축구는 세계 최강이다. 자녀에게 헌신적인 ‘사커 맘’이란 표현도 생겼다. 2026년 월드컵이 북미에서 공동 개최되면 저변 확대와 실력 향상에 기여할 것이다.
중국 축구가 열세를 면치 못하는 것을 가리켜 타임지는 ‘현대 스포츠의 미스터리’라고 평했다. 축구광인 시진핑 국가주석이 ‘축구굴기’를 선언하고 지원하고 있음에도 제자리걸음이다. 문화혁명, 관시문화, 개인종목 위주의 정부 주도 엘리트 체육 육성, 체계적인 유소년 육성 시스템 결여, 선수의 유럽 진출 부족 등이 이유로 꼽힌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축구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어서 성장잠재력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인류의 대표적 문화현상인 축구 경기는 국제정치의 연장이다. 각국은 국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정치이념과 체제 선전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가 약진하는 등 축구의 세계화에 따라 전반적인 상향평준화 경향을 보였다. 많은 국가가 축구 발전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만큼 필드에서의 국제정치도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다.
박희권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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