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황후의 굴레 20년' 엘리자베트, 마침내 코르사주를 벗어던지다

입력 2022-12-18 17:46   수정 2022-12-19 00:31

수많은 역사 속 인물 가운데서도 두고두고 회자하는 사람이 있다. 600년 역사의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가장 유명하고 많은 사랑을 받은 황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1837~1898)가 대표적이다. 엘리자베트는 빼어난 미모와 우아함을 갖춘 동시에 자유분방한 영혼을 가진 매혹적인 인물이었다. 그 덕분에 그의 캐릭터는 영화, 드라마 등으로 꾸준히 재창조되고 있다.

그런 엘리자베트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한 마리 크로이처 감독의 영화 ‘코르사주’가 오는 21일 개봉한다. 코르사주는 드레스 등을 입을 때 배와 허리를 조여 매는 교정용 여성 속옷을 의미한다. 지난 9월 나온 넷플릭스 시리즈물 ‘황후 엘리자베트’가 황제와의 결혼을 앞둔 열여섯 살의 엘리자베트를 담았다면, 이 작품은 마흔 살이 된 중년의 황후를 그린다. 그가 황실에서 화려한 생활을 누리는 모습보다, 자유를 갈망하고 꿈꾸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엘리자베트가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기 위해 코르사주를 조여 맨 것을 부각한다. 엘리자베트는 실제 남들의 눈을 의식하며, 아름다운 미모와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곧 황후에 대한 세상의 시선과 기대, 즉 왕관의 무게를 의미하기도 한다.

엘리자베트는 그 무게에 짓눌린 삶에 강한 염증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주 황실을 떠나 바깥세상으로 여행을 간다. 엘리자베트는 말을 즐겨 타고, 달이 뜬 밤 호수에서 마음껏 헤엄치며 자유를 만끽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바깥세상을 즐길 수는 없는 법. 카메라는 황실 안, 황실 밖을 반복적으로 오갈 수밖에 없는 엘리자베트의 운명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그의 깊은 고뇌를 드러낸다.

영화는 엘리자베트의 정신적 방황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정신병원에 들러 열악한 환자들의 처우 개선에 힘쓰고, 문학과 철학 등을 즐기는 모습을 두루 비춘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코르사주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유를 택하기까지의 과정을 여실히 담아낸다. 이를 통해 주체적 여성상을 제시하며, 관객들에게 짜릿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엘리자베트 역을 맡은 비키 크리프스의 연기도 뛰어나다. 크리프스는 ‘팬텀 스레드’ ‘베르히만 아일랜드’ 등 명작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그는 억압으로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황후의 모습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표현해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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